Interview

​인류를 기록하는 지구인

의식을 깨우는 친절한 리마인더 / 존 스탠메이어 John Stanmeyer

미국 메이저리그의 포스트시즌이 한 창 진행 중이던 가을에 서울의 여의도에서 존 스탠메이어를 만났다. 그를 만나면 다짜고짜 야구 이야기를 할 심산이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조기 탈락으로 나에겐 싱거운 일정만 남은 상태였지만 미국인인 그에겐 분명 여전히 흥미로울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일리노이즈에서 태어나고 현재는 매사추세츠에서 살고 있는 그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팬일지 보스톤 레드 삭스의 팬일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미국인과의 대화를 트기 위한 안전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의 대답은 ‘관심없다’였다. 그리고 그의 외계인과도 같은 대답이 이어졌다. “난 지구인이다.” 9살에 떠난 일리노이즈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고 매사추세츠에 산 시간은 일리노이즈에서의 것보다 짧다고 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났을 뿐 주로 바하마와 유럽에서 성장했으며 8년 전까지는 아시아에서만 12년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정치적인 합의와 같은 국경의 의미는 무의미해보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나 타임즈(the Times) 등 굵직한 매체들과 일을 하면서 그가 다뤄온 이야기들도 주로 그러했다. 특정 지역에 한정된 긴급한 뉴스나 정치적 쟁점보다는 오래전 인류의 이주부터 현재 인류에게 닥친 질병과 종교, 그리고 식량위기와 환경파괴까지 인류의 보편적인 고민과 아젠다에 관련된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인과 야구를 맹목적으로 연결 지은 편견에 대한 부끄러움이 채 가시지도 전에 실례를 무릅쓰고 한 번 더 뻔한 질문을 해야만 했다. 올해의 사진상 수상에 관한 질문을 해야 했으니까. 30년 가까이 전 세계를 무대로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받는) 현장에서 뛰어다닌 포토저널리스트에게 상패 따위가 큰 의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월드프레스(World Press)에서 선정한 올해의 사진으로 존 스탠메이어를 기억하고 알게 된 사람들이 많기에 그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부끄럽게 시작한 지구인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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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월드프레스포토에서 2014년도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된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진을 촬영한 곳은 아프리카의 지부티(Djibouti)의 한 해변이었다. 지부티는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 틈에 있는 작은 나라인데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동의 예멘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이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장기 프로젝트인 'Out of Eden Walk'의 일정 중에 촬영한 것이다. ‘Out of Eden Walk'는 작년 2013년에 시작하여 2020년에 끝나는 7년 장기 프로젝트인데 우리는 '느린 저널리즘(slow journalism)'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디오피아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유적에서 시작해서 약 6~7만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이동로를 따라 가는 것이다. 인류의 이동이 그러했듯 아프리카에서 시작해서 중동을 거쳐 인도와 중국을 지나 북미로 이동한 후에 남미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가서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1만2천 년 전에 마지막으로 정착한 칠레의 남쪽 끝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에서 끝나는 일정이다.

지금까지 네 번의 촬영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이디오피아와 지부티였다. 2013년 초 쯤에 지부디에 도착해서 낮부터 밤이 되어서까지 돌아다니다가 이 해변가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팔을 공중에 휘젖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소말리아 사람들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가려는 이주자들이다. 소말리아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지부티의 통신비가 비싸기 때문에 소말리아의 국경과 가까운 지부티의 해변에 나와서 고국에서 오는 신호를 찾고 있던 것이다. 처음 주목한 이후에 계속 밤이 되면 이 해변가에 나가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촬영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첫 번째 촬영 이후에 두 번째 촬영은 사우디 아리비아였고 세 번째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그리고 최근에 네 번째 경로인 터키에서 촬영을 끝냈다. 다음에는 이란과 그루지아로 갈 예정이다.     

 

‘Out of Eden Walk'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제안한 것은 저널리스트 폴 살포펙(Paul Salopek)이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한 그는 생물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인데 폴이 7년간에 걸친 여정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고 나는 중간 중간에 합류하여 같이 작업하게 된다. 

다만, ‘Out of Eden Walk'는 폴에 관한 이야기도 고고학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여정을 따라가다 소말리아 사람들처럼 이주자도 만날 것이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유목민, 무역상, 농부, 어부 등 뉴스에서 주목받지 못할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있다. 

 

월드프레스포토의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된 과정을 듣고 싶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다. 마감일 당일이 되어서 얼른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월드프레스 측에서 다시 확인 차 원본을 받고 싶다고 그랬다. 색상을 약간 조정한 것 외에는 수정한 것이 없어서 요구한대로 주었다. 촬영 때문에 요르단에 있을 때 새벽에 수상 소식을 들었는데 그동안 제출한 것조차 까먹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콘테스트에는 별로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이번에도 내가 아니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위해서 제출했다. 비슷한 상을 수상한 적이 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늘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콘테스트 수상을 위해 사진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다만, 이번 수상처럼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Out of Eden Walk'과 같은 프로젝트 자체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니 기쁘게 생각한다.       

'Out of Eden Walk' 전에도 오랫동안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십 년 정도 되었고 대략 14~15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같이 한 것 같다.

처음에 어떻게 내셔날 지오그래픽과 일하기 시작했나.

나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그들과 같이 일하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그 전부터 타임즈의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나의 사진도 내가 참여한 이전 기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그 어떤 유명 매체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차곡차곡 자기 경력과 이야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모든 것이 복권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어차피 이쪽 분야도 좁고 그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의 사진과 참여한 기사를 늘려가다 보면 곧 좋은 매체들 눈에도 들기 마련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되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스토리를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촬영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본인이 보도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떠한 방식으로 찾게 되는지.

책이다. 꾸준히 책을 읽고 작은 일에도 주목하고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 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안한 일이 본인의 가치관이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의 윤리와 충돌한다는 생각에 고민한 적은 없는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경우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가치관의 충돌과 같은 문제 때문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은 나와 나의 사진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사진 편집장으로 일할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다. 그런 위치와 능력이라면 어떤 작업이 어떤 사진가에게 최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나한테 동물 사진이나 스튜디오 촬영을 부탁하지는 않으니까.

‘Out of Eden Walk' 같은 경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먼저 전화를 해서 의사를 물어보았다. 특히 많이 걸어야 하는 프로젝트라서 그 점을 염두하고 미리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여느 새 프로젝트처럼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언제든 누구든 그런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곧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일할 때 사진가의 참여는 어디까지 이루어지는가? 촬영을 끝내고 필름이나 파일을 넘겨주면 그걸로 끝인가?

끝까지 참여한다. 촬영뿐만 아니라 사진의 선정, 기사의 편집과 디자인 레이아웃까지 다 참여한다. 사진의 위치와 크기까지 정하는 레이아웃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의견을 얘기하면 경청해준다. 서울에 오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워싱턴DC에 있는 본사에서 그러한 의논을 하다 왔다. 편집장은 지휘자와 같고 나는 그의 오케스트라에 속한 바이올리니스트와도 같다. 나는 끝까지 훌륭한 연주에 책임을 져야하고 편집장은 전체적인 조율을 염두하고 모든 단원들과 소통해야하는 것처럼. 사진 편집장이나 글을 쓴 저널리스트만큼이나 포토저널리스트로서의 나도 해당 기사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참여자이다. 

 

‘Out of Eden Walk'외에 다른 프로젝트들 이야기를 듣고 싶다.

‘Amazon Ablaze'는 중국으로 수출할 곡물을 생산할 농지를 만들기 위해 아마존의 광활한 지역이 한꺼번에 파괴되는 풍경을 담은 것이다. 특히 4일 동안은 비행기로 상공을 오가면서 항공촬영을 했다. 아마존 파괴는 대부분 브라질 정부의 주도나 승인으로 이루어진다. 

그 외에도 식량 위기를 다룬 여러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에이즈와 말라리아 같은 질병 문제를 다룬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인도, 미국, 러시아, 터키, 일본 등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서 신성하게 다뤄지는 프로젝트 'Sacred Water'도 있었다. 또한 화산을 신으로 섬기는 인도네시아의 한 문화를 다룬 'Volcano Gods'도 있었다. 

그 중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안했던 프로젝트와 함께 본인이 직접 제안했던 것들도 있었을 텐데.

‘Sacred Water'와 말라리아 프로젝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기획을 했고 아마존 파괴를 포함한 식량 위기와 'Volcano Gods'는 내가 먼저 제안해서 시작됐다.

         

 

사진가로 활동한지 20여년을 훌쩍 넘었는데 오랜 시간동안 사진가로서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동시에 세상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게도 되었고. 재능이 많은 사람들을 여럿 만났고 그들은 내게 도움을 주고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진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진은 디지털 시대에 관해서 더 이상 의문을 갖고 있지 않지만 수정과 왜곡이 손쉬운 디지털의 속성은 저널리즘에서는 여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예술의 창조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 수용하겠지만 포토저널리즘에서는 진실성을 지켜야한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면에서 포토저널리즘은 그 어떤 형식보다 순수성을 지킬 수 있고 그 순수성이 가장 자주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진실성만큼 강한 것은 없다. 의문도 필요 없고 대적할 만한 것도 없는 것이 진실이다.   

 

아시아에서 오래 거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홍콩에서 7년, 인도네시아에서 5년을 살았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90년대의 말의 홍콩이나 동티모르의 독립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던 21세기 초의 인도네시아나, 내가 아시아에서 지내던 시간에 여러모로 동남아시아에게 격동의 시간이었다. 

2004년 말에 있었던 쓰나미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있었는데 타임즈로부터 바로 연락을 받고 인도네시아와 방콕, 그리고 스리랑카를 거쳐 태국 푸켓과 마주보고 있는 인도네시아 위쪽 끝 아체(Aceh)에 한 달간 머물면서 촬영을 했다. 피해 정도가 광대했고 아체도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이번에 서울 일정이 끝나면 바로 아체로 간다. 그곳에서 10주년 추모행사가 있다.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거다.          

6년 전부터는 미국으로 돌아가 매사추세츠의 한적한 시골인 오티스(Otis)에서 두 아이와 작가인 아내와 살고 있다. 그곳에 작은 갤러리와 카페도 가지고 있다. 카페는 내가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구심점이기도 해서이다. 근대와 현대의 여러 역사적인 커다란 변화의 시작은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시작하기도 했으니까.

 

카페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왠지 그 카페에 가면 나도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제든지 와라. 모두 윤리적으로 재배되어 제값을 지불한 원두만 취급한다. 무엇보다 맛이 좋다. 대접하겠다. 물론 나는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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