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익숙하면서도 낯선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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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우수협동조합사례집 : 제주과일아삭협동조합

 

| 설렘과 안도감

제주 공항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늘어선 야자수들이 연우는 언제나 신기했다. 한국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생경한 풍경이 주는 설렘이 있다. 동시에 제주는 설렘과 함께 여전히 한국이라는 안도감으로 맞아준다. 익숙한 낯섦이라고나 할까. 일상에서도 늘 마주쳤으면 좋겠다, 고 연우는 생각했다.

 

제주도는 여행보다 일 때문에 온 적이 더 많았다. 출장 때는 늘 택시를 탔었다. 연우는 이번에는 렌터카를 빌리기로 했다. 연우는 주로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 틈에 끼어 셔틀을 타고 렌터카 업체로 이동했다. 혼자인 사람은 연우뿐이었다. 웃고 있지 않은 사람도 연우뿐이었다. 

그래도 연우의 마음은 여느 때보다는 가벼웠다. 하루 취재 일정이 있었지만, 다음 날은 온전히 비워두었다. 렌터카를 빌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취재 후 하루라도 제주도를 여유롭게 돌아보고 싶었다. 관광 루트라든가 계획 같은 것은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해변을 따라 달리거나 오름 사이를 오가고 싶다는 바람만 확인했다. 모두가 들떠있는 여행객들을 뒤로하고 연우는 차를 받아 취재지로 먼저 향했다.

| 감귤과 오렌지

 

‘제주과일아삭협동조합’

제주도의 생경한 풍경은 야자수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감귤, 한라봉, 애플망고, 레드키위 등, 육지에서는 재배하기 어려운 과일들이 제주도에는 유독 많다. 제주과일아삭협동조합은 그러한 제주도 특산 과일들을 모아 육지로 보내는 업무를 하고 있다. 물론, 육지에서 난 과일들을 들여와 제주도민들에게 공급하기도 한다. 

“육지로 보내는 물품 중에 감귤과 한라봉이 80% 이상은 돼요”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했을까, 제주과일아삭협동조합의 최종대 이사장은 쌓여있던 감귤과 한라봉 상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연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중에도 택배 준비로 바쁜 이사장은 작업에서 한 눈도 떼지 못했다. 한 주 전에 업무가 비어 있는 틈을 찾아 미리 일정을 잡았는데 갑자기 들어온 주문이라고 했다. 

80%라...100%가 아니고? 감귤과 한라봉 하면 제주가 연상되고, 제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과일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연우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라봉이 감귤과 서양 오렌지의 교배종인 건 알고 계셨어요?”

그건 몰랐다.

| 오래된 신뢰와 새로운 원칙

“육지로 제주도 특산 과일을 보내는 협동조합이 또 있나요?”

“아녜요, 저희뿐이에요. 유일한 과일협동조합이자, 유일하게 성공한 과일협동조합이죠.”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협동조합이 되셨는데, 처음부터 쉬웠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죠, 모든 협동조합이 다 그렇겠지만, 저희도 힘든 순간들이 많았어요. 제 친동생이랑 또 동생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조합을 시작했는데, 5년 전에. 원래 모두 과일 도소매 관련 일을 하고 있었죠.”

“가족과 지인들끼리 시작했다면 일단 믿고 시작할 수 있으셨겠어요?” 

“아무래도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유대감과 신뢰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서로 잘 알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초기에는 그냥 서로서로 이해하자, 라는 암묵적 합의만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신뢰는 기본이었던 거고 원칙과 규칙이 있어야 했어요. 또한, 업무를 분담하고 자주 만나고 회의도 많이 하고 꾸준히 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차츰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는 당연하게 들리고 간단하게 정리되었지만, 실제로 실행하고 지켜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는 연우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조합을 시작할 때의 어려움이 그것으로 끝나지도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연우는 머릿속에서 또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받은 도움도 빼놓을 수 없죠.” 

연우는 마음을 들킨 듯해서 흠칫했다.

“초기에는 거의 모든 수익을 조합원들에게 배분하지 않고 재투자로 돌렸어요. 그 때문에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더구나 조합을 결성하면서 몸집이 불어났고 대량 매입도 해야 했는데, 그게 조합 결성의 주된 이유잖아요. 대량 구매를 통해 원가를 낮추는 거요. 그런데 자금이 부족한 거예요. 가뜩이나 공동사업장을 시작하면서 필요한 장비나 기계도 많았는데. 그때 공단에서 대출도 받고 여러 가지 지원을 많이 받으면서 하나하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지원을 받으신 거죠?”

“여기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거에요. 밖에 있는 차량, 지게차, 그리고 특히 저 저온저장고가 가장 큰 보물이죠. 그 외에도 판로와 브랜드 구축, 온라인 마케팅 등 보이지 않는 지원도 많이 받았어요. 한 3년 동안 쭉 신세를 졌죠.”

| 일상과 여행

그때 ‘왕좌의 게임’ 테마곡이 울렸다. 최종대 이사장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업무 관련 전화를 받는 동안 연우는 이사장이 직접 내어준 한라봉차를 비웠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연해진 한라봉의 껍질까지 자연스럽게 입안에 모두 털어 넣었다. 빈 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맞추어 이사장은 전화를 끊었다.

“남들이 놀러 오는 휴양지에 사는 느낌이 어떠세요?”

“별거 없어요. 더 큰 문제는 2년 전까지는 제대로 즐길 시간도 없었어요.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던 때에는 쉴 수 없어서 여행을 다닐 여유가 없었고요, 조합을 시작한 이후로는 시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없었죠.” 

길어진 취재에 지쳤을 법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연우가 던진 질문을 이사장은 다시 바로 조합 이야기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조합이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2년 전부터는 가능해지더라고요. 그것도 조합원들이 있으니까 가능해진 거죠. 혼자 할 때는 하루라도 쉬면 그게 다 내 손해라 쉴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 조합원 한 명이 쉬면 다른 조합원들이 공동사업장뿐만 아니라 개인사업장도 봐주고 배달까지 다 해줘요. 덕분에 돌아가면서 휴가를 다녀옵니다.”

“가족분들이 좋아하시겠어요.”

“말도 못 하죠. (웃음)”

내내 목소리에 거의 기복이 없던 이사장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공항에서 만났던 여행객들의 목소리와 같이 살짝 들뜬 톤으로 잠시 변했다. 

“평소에도 그래요. 예전에는 갑자기 바빠지면 사람을 써야 했는데 이젠 조합원들끼리 돕고 하니 인건비도 절약되죠. 과일 장사를 시작한 지야 다들 오래되었지만, 조합은 또 다른 세계더라고요. 어려운 점에서도 그렇고, 좋은 점에서도 그래요.”

연우는 그 순간 한라봉이 떠올랐다. 익숙한 감귤과 낯선 오렌지의 조합 같은 것일까? 십수 년에서 수십 년간까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닌 것을 보면 협동조합이 또 다른 세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감귤과 오렌지가 한라봉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지키고 또 무엇을 버려야만 했을까? 불연 익숙함과 낯섦에 대해서 생각이 깊어졌다. 다행히 연우에게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제주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하루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