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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온 다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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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다낭은 딱이었다. 작은 여행가방에 두터운 겨울 옷을 구겨 넣어야 할 정도로 춥지도 않았고, 귀찮은 땀을 신경써야 할 만큼 덥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도착한 첫날부터 본 맑은 하늘은 여행자의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다.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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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왔다. 조식을 먹으로 내려가는 길에 외부 풍경이 내다보이는 엘리베이터 유리벽을 비가 새차게 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놀라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게 스콜이구나. 스콜이겠지? 그 정도는 알고 왔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그치겠지. 그렇지?

하지만, 오랜 동안 정성스럽게 조식 뷔페를 먹는 동안에도 비는 조금도 진정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날씨 앱을 확인한 건 앱의 존재를 잊어버려서는 아니었다. 굳은 날씨를 애써 모른척 하고 싶었던 여행자가 간절히 기도같은 거였다.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태풍이란다. 오늘은 호이안에 다녀와야 하는데. 호이안은 이번 여행에서 아내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결국은 포기한 듯 아내가 조용히 읇조렸다.

"호이안만은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 한 마디는 오히려 호이안을 다녀오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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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서 호이안을 다녀오고 호이안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호이안을 다녀오는 패키지를 구매하기로 했다. 부분적으로나마 내 인생의 최초의 패키지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호이안과 다낭을 오가는 교통편만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격 차이가 크지 않고 자유시간도 2시간이나 준다고 해서 '절대'라는 원칙을 '융통성'으로 덮어버리고 구매한 패키지였다. 마블 마운틴도 결국,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단 게 함정이었다. 

쏟아지는 비가 잠시 후 그칠 스콜이 아니고, 거센 바람이 곧 누그러질 지나는 바람이 아니고, 지금 우리에게 온 것이 호우도 아닌 태풍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여행 서비스에 다급한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다급한 나의 마음과 달리 여행사의 문자는 매우 차분했다. 

'예정대로 출발합니다'

문자에서 쿨 내가 났다. 아니, 콜드였다. 최소할 수도 없었다. 환불도 없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 가기로 했다. 태풍 덕분에 날씨가 쌀쌀해져서 아내가 옷을 단단히 입었는지 확인했다. 나는 스콜을 대비해 준비했던 우비를 입었다. 호텔에서 준비해 단단한 우산도 챙겼지만 그것이 소용 없다는 것은 호텔 문을 나서자 마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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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패키지 여행은 마무리하지 못했다. 마블 마운틴에서는 물이 고이고 질퍽해진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딛기며 몰려다녔다. 우리의 속도대로 다니지 못해서 여유는 없었지만 비와 어둠 속에서 본 마블 마운틴은 을씨년하다못해 신비롭기까지 했다. 호이안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간 식당에선 마침 다른 패키지 여행객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낭 여행 동안의 최악의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내가 갑자기 탈이 났기 때문이었다. 여행사에게 준비한 저녁은 최악이었지만 식사가 문제는 아니었다. 탈은 앉기 전부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행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일어나 다낭으로 돌아왔다. 

다낭으로 돌아오는 그랩카 안에서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난 괜찮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이대로 호이안은 지켰다는 했다. 마블 마운틴은 구하지 못했지만. 그와 같은 상태로 일정을 강행했다면 호이안을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더 좋은 날에 다시 오자고 했다. 제대로 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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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왔다. 고층 호텔 테라스 문 틈으로는 거센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망친 건가. 잠시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그날 하루 중에 가장 좋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조식을 먹고 올라와 패키지 여행을 시작하기 전 2시간 동안 호텔에서 기다린 시간이었다. 비와 바람 소리가 함께 요란한 그때, 우리는 음악까지 더해서 서로 꽤나 잘 어울리는 소란을 즐기고 있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격렬히 흥겨워하던 여유였다.

하루 종일 그렇게 지낼 걸 그랬나. 진심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음에도 우리를 태풍 속 패키지 일정으로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돈이 아까워서였을까, 아니면 여기까지 왔는데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봐야한다는 강박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자유 여행을 즐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패키지 여행이 실패한 이유는 탈이난 아내 탓도 태풍 탓도 여행사 탓도 아니었다. 내가 일상에서 익힌 강박과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이었다. 일정을 강행한 것은 여행사였지만, 결국 그것을 따른 건 나였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과 욕심의 내가 떠민 일정이었다. 그냥 호텔에 남아서 온전히 하루를 비와 바람과 음악 소리에 묻혀, 일상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여유를 포기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