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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스토리,

할리우드 성폭력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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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은 매회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로 ‘metoo’의 흐름 속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고백의 용기를 낸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을 선정했다. 지난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급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으로 시작된 할리우드 성폭력 파문이 끊임없이 확장하면서 관련 분야와 대상자들을 확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고, 그러면서도 이제야 그 빙산이 일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후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2018년 새해에도 한동안 이어질) 할리우드 성폭력 파문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누가 관련되어 있으며, 또 ‘공공연했던 비밀’이 이렇게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어떻게 시작되었나?
할리우드의 성폭력 파문의 조짐은 뜻밖에도(?)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되었다. 우버 내부에서 최고경영자(CEO)인 트래비스 칼라닉의 성추행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이를 묵인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블로그를 통해 이를 폭로한 것은 우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수잔 파울러였다. 파문이 일어난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던 칼라닉은 우버기사와 말타툼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고 경영 악화가 겹치면서 6월이 되어서나 사임했다.
 
그다음 큰 파문은 할리우드와 가까운 방송계에서 있었다. 폭스 뉴스의 간판앵커였던 빌 오라일리가 지난 15년간 성추행 피해자에게 지급한 합의금만 1천3백만 달러(약 14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칼라닉 사건 2개월 후인 4월에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 보도의 중심에는 빌 오라일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초대손님이었던 심리학자 웬디 월쉬가 있었다. 보도 이후로 광고가 줄어들자 폭스뉴스는 결국 오라일리를 해임했지만 또 다른 성추행 합의금을 지급하면서 총합의금이 4천5백만 달러(약 486억 원)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10월에 추가로 폭로되었다. 그리고 10월, 결국 할리우드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파문이 터졌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누구?
하비 와인스타인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이자 감독이었다. 동생 밥과 함께 독립영화제작사인 미라맥스를 창립한 이후 <펄프픽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을 제작했으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상을 직접 받기도 했다. 1993년 회사를 월트디즈니사에게 매각한 이후에도 미라맥스에 남아 10여 년간 <굿 윌 헌팅>과 <스크림> 시리즈 등을 제작했던 와인스타인은 2005년에 독립하여 동생과 다시 와인스타인사를 설립하였다. 와인스타인사는 <장고:분노의 추적자>, <킹스 스피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등을 성공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런 할리우드 거물급 인사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전력이 알려진 것은 10월 5일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와인스타인과 함께 일했거나 일하고 있던 수십 명의 직원들이 관련 증언을 한가운데 핵심 증언자 중에 배우 애슐리 주드와 미드 <참드>의 스타 로즈 맥고완이 포함되어있었다. 곧이어 뉴요커에서 추가 피해자들의 증언과 폭로가 이어졌고 기네스 팰트로와 안젤리나 졸리는 타임스를 통해서 와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 이후로도 그의 피해자 명단은 계속 길어졌으며 이에는 셀마 헤이엑, 로잔나 아퀘트, 헤더 그레이엄, 대릴 한나, 숀 영도 포함되어있다.

와인스타인 효과
하비 와인스타인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의 성폭력 파문은 와인스타인으로 끝나지 않았고 할리우드에서 멈추지도 않았다. 우선 10월 말에 배우 앤소니 랩은 자신이 14살 때였던 때 자신을 케빈 스페이시가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곧이어 다른 15명이 피해자가 비슷한 증언을 했다. 결국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인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도 하차한 스페이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에서는 촬영이 다 끝난 상황에서 배우가 교체되어 통째로 대체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와인스타인 사태로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대상으로 2014년에 제기되었던 두 건의 성추행 의혹이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러시 아워> 시리즈의 브렛 래트너 감독은 엘렌 페이지, 올리비아 문, 나타샤 헨스트리지 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토이스토리> 등 수많은 히트작들을 통해 픽사의 신화를 쌓아 올렸던 존 라세터도 사내 성희롱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석창작책임자(CCO) 자리에서 자진 휴직을 하며 내려왔다. 


방송계에서는 코미디언 루이스 C.K., NBC의 간판 앵커 맷 라우어, CBS 방송 진행자 찰리 로즈, MSNBC의 정치평론가 마크 핼러핀 등도 성폭력 의혹을 받거나 사실이 밝혀지면서 담당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거나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기도 했다. 와인스타인에서 시작된 성폭력 파문은 결국 미국의 영화, 방송, 음악을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계를 넘어서 미국의 정계는 물론 해외로까지 건너가서 영국, 캐나다, 호주의 정계와 연예계를 흔들어놓고도 있다. 결국 이렇게 퍼진 전 세계적인 성폭력 파문의 파도타기를 ‘와인스타인 효과(Weinstein Effect)’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왜 갑자기? 지금?
그럼, 와인스타인이라는 한 사람의 성폭력 이슈가 어떻게 그런 막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을까? 하비 와인스타인에 관한 최초의 보도가 이뤄진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면 와인스타인의 그러한 성폭력이 이미 20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사에서 인용한 와인스타인이 애슐리 주드를 호텔로 불러 은밀한 요구를 한 것이 1997년의 일이다. 그런데 애슐리 주드의 그 날의 일이나 수많은 피해자들의 사례는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
 
애슐리 주드는 1997년의 일이 일어난 직후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지만 적절한 대응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와인스타인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었고, 윗사람들은 와인스타인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와인스타인은 그동안 성희롱 피해자들과 8만 달러(약 8천640만 원)에서 15만 달러(약 1억 6천200만 원)의 합의금을 지급해오며 그때마다 무마하기도 했고, 제임스 토백 감독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 “눈알을 뽑아 허드슨강에 시체를 버려버리겠다”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고발 이후의 불이익이나 보복이 두려운 것은 물론, 오히려 피해자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피해자들이 쉽게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도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였다. 코넬대학교의 한 여성단체가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 ‘sexual harrassment(성폭력)’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이 1975년이었지만 대중이 익숙하게 된 것은 1990년대에나 들어서였다. 1991년 당시 연방대법관 후보였던 클래런스 토머스를 상대로 변호사이자 법대 교수인 애니타 힐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성폭력’의 정의와 문제성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결국 자리에 앉힌 토머스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도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하비 와인스타인에 앞서 코미디언 빌 코스비도 거의 50명에 달하는 여성들로부터 성폭력 혐의를 받아왔다. 와인스타인에 버금가는 수의 여성들과 기간은 물론 약물까지 사용했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6월에 미결정 심리로 끝이 났으며 몇 년간을 이어진 빌 코스비 재판은 와인스타인 효과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했다. 

 
이러한 와인스타인 사태 이전의 이슈들이 구체적인 변화나 와인스타인 만큼의 전방위적인 파문을 가져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로는 몇가지가 추측되고 있다. 우선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의 피해자인 애니타 힐은 흑인이다. 그리고 빌 코스비의 50여 명의 피해자 명단 중에는 애슐리 주드나 기네스 팰트로와 안젤리나 졸리 같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이 없었다. 유명 배우들의 증언들은 당사자들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었고, 사람들이 주목하게 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지금 미전역에서 전 분야의 다양한 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피해 사실을 알리는 힘을 실고 있는 해쉬태그 ‘metoo’ 운동도 비영리단체의 타라나 버크가 성폭력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2006년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와인스타인 성폭력 파문이 시작된 이후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사용하기 시작하면서야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미투’ 운동의 플랫폼이 된 SNS이 구심점이 되어 공론화가 쉬워진 환경의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2017년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앞으로 나서고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2017년 1월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날드 트럼프와도 관련이 있다. 도날드 트럼프 역시 수많은 여성들의 고백을 통해 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고 하다못해 노골적인 성비하와 성희롱의 내용이 담긴 오디오가 공개된 후에도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한 트럼프의 당선은 많은 여성들에게 위기감을 주었고 그러한 위기감이 지금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하비 와인스타인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의 성폭력 파문은 곧 새해가 되는 2018년에도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성추행 방지-평등 증진 위원회’를 출범하고 일치감치 와인스타인을 제명한 아카데미 위원회도 회원들에게 새로운 도덕적 기준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기구 하나와 형식적인 조치들만으로 성폭력이 당장에 근절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어 보인다.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정착이 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된다면 지금의 움직임이 1세기 전 미국에서의 여성참정권 운동처럼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