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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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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박형근 작가를 만나다

 

그는 낯선 섬에서 길을 잃었다. 인적도 드문 이곳에서 내비게이션조차 안내를 체념한지 이미 오래였다. 갑작스런 눈으로 숲과 길은 구분되지 않았고, 세상의 낮은 밤처럼 어두워졌다. 그 종류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들만이 간간히 들려오다가, 그 마저 곧 깊은 침묵 속으로 잠들어버렸다. 육지에서 그렇게 한가롭고 부드럽게 보이던 섬은, 그가 당도하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표정을 바꾸었다. 이 섬이 감싸고 있는 호수 한 켠에 머리를 잃은 사체가 남겨지고, 토막 난 사체를 담은 가방이 놓여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였다. 어둠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에 둘러싸인 그는, 낮아진 체온과 세상에 홀로된 두려움으로 버려진 아이처럼 몸을 떨었다.

 

그 어둠 속을 빠져나온 이후에도 그는 이 섬에 가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섬에 거처를 마련하고 섬의 흔적을 수집하며 한동안을 머물렀다. 섬을 오간지도 오래, 하지만 그는 섬에 정착하고서야 이웃으로부터 그동안 몰랐던 섬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섬에는 일제강점기에 일정한 거처 없는 아이들을 잡아다 노동을 강요하고 전쟁터로 내몰던 수용시설이 생겼다. 하지만, 일제가 세운 이 ‘학원’은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로도 40년 가까이 더 방치되면서 아이들을 감금하고 착취를 이어갔다. 어린 아이들은 학원과 섬을 탈출하기 위해 담장을 넘고 바다를 건넜지만, 그들 대부분 다시 잡혀 매를 맞거나 목숨을 잃었다. 운이 좋았던 몇몇 아이들도 섬사람들에 끌려 학원에 다시 넘겨져 쌀 한 봉지와 교환이 되었다. 섬에 고립된 사람들은 세상의 눈을 피해 원하는 대로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고, 그들은 가해자였고 또 동시에 희생자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그 자리에 남아서 끝까지 마저 다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섬에서도 4.3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었다. 제주를 떠나 광주의 어두움 암실에서 5.18 기록사진 속의 주검들을 바라보며 목격했던 이야기도 다를 바 없었다. 섬에서 나서 육지로 자리를 옮기고 또 다시 다른 섬으로 지표를 바꿔도, 겉옷만 갈아입은 똑같은 비극들이 그의 하늘을 흐리고 길을 가렸다. 그는 어디인지 모를 숲속에 혼자 버려지고 또 버려졌다. 훼손된 사체를 어딘 가엔가 숨기고 있을 숲은, 어둠 속에서 그를 방관한 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사람이 흘러들어온 이후에도 수천 년을 고립되어있던 섬은 불과 30여년 전에야 거대한 방조제가 이어지고 다리가 올라가면서 육지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곧 물길이 막히고 바다는 호수가 되었다. 육지의 끝은 매끈해지고 섬은 불어났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왔다. 섬은 이전 더 이상 예전의 섬이 아니었다. 이젠 섬도 아니었다. 일제는 물러갔고, 학원도 문을 닫았다. 아이들은, 무덤으로 육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희생자들은 가해자들로부터 멀리 도망치기도 했고, 혹은 그들의 이웃이 되기도 했다. 육지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섬사람들도 있었고, 다리를 타고 육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섬에서 새로 적응하기도 했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테마파크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사진을 남기기도 했고, 바다가 보이는 골프장에서 한가롭게 잔디 위에 티샷을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섬의 풍경은 어쩐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섬은 여전히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가해자이기도 하고 또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고립과 착취가 떠난 자리에 대신 수많은 불도저와 거대한 기중기가 들어왔다. 테마파크와 골프장을 들이기 위해, 산과 바다를 깎고 내주어야 했다. 펜션이나 캠핑장 혹은 골재가 생기는 대신, 섬의 곳곳이 뒤집혀서 허연 속살을 드러내게 되었다.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생업에 위협을 받고 있던 섬사람들은 마음이 급해졌고, 주변 도시의 성장으로 팽창하는 인구를 끌어들여 수익을 올릴 기회를 엿보고 있던 개발자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섬의 사람들도 섬의 자연도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고 남은 것은, 이제 12시간마다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뿐이었다.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에서 살가두의 프로젝트들은 시간 순으로 천천히 나열되면서 9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르완다와 콩고에서의 비극을 촬영한 사진들로 이어진다.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어두운 이미지들의 연속이 힘겹게 끝나는 시점이 되면, 브라질의 광산에서 느꼈던 강렬한 힘과 은유적이었던 폭력은 어느덧 인간의 잔악성과 원초적인 폭력만 남게 되는 절망적인 참담함으로 바뀌게 된다. 학살된 시체가 길거리에 쌓여서 썩어가고 질병에 쓰러진 시체 더미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사진 끝에 살가두 작가의 커다란 눈빛이 비추인다. 그리고 그가 관객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인간성에 깊은 회의를 보이고 ‘인류는 구원 받을 가치도 없다’고 말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우리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남은 건 요한계시록에서 명시한 대로 심판의 날만 기다리면 곧 인류의 종말이 당도할 것만 같았다.

 

그는 섬 끝에 서서 갯벌 위로 밀려들어오는 물과 빠져나가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밤이고 낮이고 이 거대한 흐름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던 힘은 그가 한동안 잊고 있던 달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낮이면 태양의 빛에 가려졌고, 밤이 되면 사람들이 눈을 감으며 보이지 않던 달이었다. 최초의 사람이 이 섬으로 흘러들어온 순간에도, 일제가 들어오고 학원이 세워지고, 다시 일제가 물러나고 학원이 무너지던 순간에도 달은 하루 두 번씩 반복되는 이 작업을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좁은 바닷길에서 쓰려져가고 죽어가던 모든 순간에도, 테마파크와 골프장이 들어서는 순간에도 그랬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사람이 자연을 무너뜨리는 순간에도 달만은 늘 똑같은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인간의 그 어떤 하찮은 법칙으로도 범접할 수 없고 그 어떤 인위적인 파괴로도 지체할 수 없는, 모든 땅과 모든 사람 모든 역사 위에 존재하는 거대하고 견고한 우주적 법칙이었다. 

 

사람들은 그 밀물과 썰물을 따라 바닷가로 밀려오기와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면서 낚시를 했다. 사람들은 물이 들어오는 때와 빠지는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은 바늘 끝이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낚싯대를 던지는 가해자임과 동시에 자신이 던진 바늘 끝에 걸리는 희생자였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낚싯대를 던졌고, 무엇이 걸린 줄도 모르고 낚싯줄을 거세게 잡아당겼다. 그러다 자신의 몸이 끌리면 의심도 없이 움직이는 바늘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좇아다녔고, 뒤늦게 벗어나려해도 몸부림을 칠수록 속살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부드러운 살을 가차 없이 찢어버리곤 했다.

 

섬을 맴돌던 그는 오늘도 방파제에 기댄 테트라포드 위에 선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위태롭다.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거대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물살까지 거스르겠다고 했지만, 테트라포드는 오히려 곳곳에 덫을 설치하고선 자만에 빠진 사람들을 재물로 삼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신감에 찬 사람들은 그 위험을 쉽게 보지 못한다. 그 사이사이의 어둠이 얼마나 깊은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성큼성큼 그 위를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 발이 빠지면 우리는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어둠의 끝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는, 그리고 내비게이션도, 이제는 섬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처음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었던 그날처럼 여전히 두렵고 혼란스럽다. 다만,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이 숲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의 굴레에 갇힌 체념이기도 했고 이제는 육지가 된 섬, 섬이 된 육지에서 회피할 수 없는 책임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기록하기로 했다. 다만, 그는 사람들을 가둔 숲도, 사람들을 삼킨 테트라포드도,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도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이 남기고 뒤틀어버린 생경한 풍경과 사람들의 파괴된 의식을 그리기로 했다. 그가 남긴 기록 속은 어디에서도 명확히 섬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덕분에 모든 기록 속에서 섬의 이야기를 떠올려야만 했다. 배가 터진 고니의 마른 시체와 하늘을 덮은 쓰레기의 검은 연기 속에서도 보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붉은 불빛 속에서도 아이들의 불안한 시선을 보았고, 잔잔한 물 위에 흩어진 붉은 핏빛의 페인트 사이에서도 쓰러진 아이들의 주검이 떠올랐다. 어디로 가도 어디로 눈을 돌려도 섬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할 재간은 없었다. 섬과 육지도 더 이상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섬을 보아도 육지를 떠올리게 되었고, 육지를 보아도 섬이 생각나게 되었다. 우리들 모두 거대한 숲에 갇히게 되었고, 그를 가두었던 섬의 숲만큼 깊은 어둠 끝으로 빠지게 되었다. 결국은, 육지가 섬을 삼킨 것이 아니라, 섬이 육지를 삼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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