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금기 중의 금기를 꺼낼

용자는 누구냐

Taste in Images

| 롯과 그의 가족


어렸을 때 TV에서 종종 보여주던 (그리고 50-60년대 할리우드의 대작 성경영화 붐 속에서 만들어진) 성경영화 중에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 내게 지금까지 남은 충격적인 이미지는 롯의 가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던 소돔을 빠져나가던 중에 롯의 아내가 천사의 경고를 어기고 뒤돌아보면서 소금기둥이 되는 장면이었다. 어렸을 땐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심판으로 느꼈던 것 같다.


영화는 그것으로 끝나지만, 사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그리고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 이후의 롯 가족의 행적에서 나온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중략)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 창세기 19:31~35

Sir Peter Paul Rubens, Lot and His Daughters, circa 1613-1614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60년대에 만든 성경영화가 이 이야기를 다루지 못한 이유는 비교적 명확해보인다. 하지만, 두 딸이 아버지와 번갈아 동침한다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이 이야기는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가며 많은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은 (영화에서처럼) 주로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하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촛점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 누가복음 17:32

Destruction of Sodom, an illustration from Nuremberg Chronicle, 1493

물론, 창세기 이후 레위기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듯 근친상간에 대한 (적어도 지금의 기독교의 해석에 의한) 성경의 일반적인 입장은 명확하다. 지금의 기독교가 롯과 두 딸의 행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기독교는 그렇게 잉태한 두 딸의 아이가 팔레스타인의 모압과 암몬 족의 시조가 된가는 점을 들어 롯과 두 딸의 행적을 악행과 악의 씨앗으로 (그리고 두 딸을 악녀로) 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와 유대인들의 관점일뿐이다. 


사실, 창세기에 기록된 그대로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중략) 후손을 이어가자' 하는 설명은 롯의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주며 사실상 근친상간을 '합리화'하려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일면 생물학적/인류학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자손(offspring)을 남기는 것이 궁극적인 생명체의 본능이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로 더 이상 남은 종족이 없다고 믿고 있는 시점에서 두 딸의 '용단'은 어쩌면 (금기였을지는 몰라도) 불가피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두 명의 사촌들과 차례로 결혼한 야곱 Jacob Encountering Rachel with her Father's Herds,

Joseph von Führich, 1836

구약은 일부 아람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졌다. 고대 언어가 다 그렇겠지만 고대 히브리어를 지금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히브리어는 9세기까지도 모음도 띄어쓰기도 없었다. 글을 읽는 사람이 이미 사건을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쓰여져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는 상당한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면 간신히 문장 속에서 그 뜻을 짐작하고, 한 두 번밖에 거론되지 않는 단어 같은 경우에는 그저 추측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날, 기독교를 떠나서도 롯과 두 딸과의 근친상간이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다못해, 이를 근친상간 이전에 두 딸이 아버지를 강간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시 남자이었을 저자가 근친상간을 정당화하기 위해 '술'과 '피해자 행세'를 동원했다는 의심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모세 5경'의 하나로 알려져있지만, 진짜 저자(들)에 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은 저자가 해석이 상당히 어려운 고대 히브리어 쓴 짧은 글에서 근친상간을 거론한 저자의 의도나 성경 안에서 그 이야기의 기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롯과 두 딸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고 얻어야 하는 것일까?

| 안 본 눈 삽니다


그에 비해 창세기가 쓰여지고 2300여년 후 나타난 19세기 이후의 영화에서 근친상간, 특히 부모와 자녀 간의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때 영화의 의도와 영화 안에서의 그 이야기의 기능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 소재가 가진 (자신의 눈을 파버릴 만큼의) 폭발력과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의) 충격은 영화에서 내러티브나 감정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나 한 방이 될 수 있다. 이는 창세기가 쓰여지고 불과 1세기 안팎 이후인 기원전 429년 경에 등장한 소포클레스(Sophocles)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이후 다양한 공연예술과 문학에서 주로 부모자식간의 근친상간을 활용하는 사용법이기도 했다. 

장님이 된 아버지를 안내하고 있는 오이디푸스의 딸/여동생 안티고네 Oedipus in Thebes,

Eugène Ernest Hillemacher, 1843

개인적으로는 부모자녀 간의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그 소재가 가치는 지나친 폭발력과 자극성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영화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기도 쉬운 폭발력을 가진데다 관객 또한 자극적인 소재에만 함몰될 가능성까지 높다. (<올드보이>를 미국 극장에서 보고 나오면서 관객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들을 엿듣게 되었는데, 모두 같은 논점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So, she was his daughter?'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를 마케팅하는 쪽에서도 그 자극적인 소재에만 집착해서 이를 마케팅의 과정에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화가 이를 결말에 가까워져 '반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반전'을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사용하지 않고 영화 전체가 모두 그 '반전'으로만 향하고 있는 경우에는 영화의 모든 내러티브와 의미가 '반전'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사려져버리기도 한다.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은 '놀라운 반전'이라는 카피) 근친상간이 포르노그래피의 인기 장르인 것만 생각해도 이 소재를 선택하기 전엔 좀더 조심스럽고 신중한 고민를 해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다.

 


| 용자들
그럼에도 그 폭발적이고 충격적인 소재를 '감히' 건들어서도 상당히 매끈하고 세련되게 다루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그 중의 하나가 <그을린 사랑>이다.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당사자들의 대응은 모두 비교적 차분하다. 진실이 밝혀지며 관객의 감정이 폭발했을 수는 있을 망정, 그 폭발력은 그 소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점까지 차곡차곡 쌓아오던 영화의 모든 레이어의 감정들이 그때를 계기로 분출구를 찾아 터질 뿐이다. 무방비로 있다가 강력한 한방을 맞는 것이 아닌, 계속 조금씩 쨉으로 두들겨 맞다가 스트레이트로 한 대 강하게 맞고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에 이제 차라리 맘 편하게 링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또한 <차이나타운>을 빼먹을 수 없다. <차이나타운>의 이야기나 메세지의 중심은 근친상간을 향해있지 않다.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는 그저 마지막에 가까워져 비열한 현실과 지형을 부각시키는 도구로써 그저 거들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마음의 속삭임>이었다. 자극적인 소재임에서 불구하고 차분하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감정선과 연출이 그 상황을 보다 객관적이고 넓은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 금기의 시작, 그리고 지금 그 의미는
부모와 자식간의 근친상간은 금기 중의 금기이다. 그것이 금기 중의 금기 된 원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도덕적 본능, 진화론적 배경, 경제적인 목적, 사회적인 합의 등까지 다양한 배경을 들어 아직까지도 수많은 학자들이 가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어떤 똑똑한 사람도 확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흔히 그것이 윤리와 고등지식을 갖춘 인간만이 가진 금기라고 믿고 있지만 침팬지 무리에서도 근친상간 금지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제인 구달(Jane Goodall)의 증언은 오히려 그 금기의 시작과 이유를 더욱 혼동스럽게 하고 있다. 


부모를 제외한 남매나 사촌 간의 결혼이나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20세기까지도 (혹은 지금도) 다양한 이유로 비교적 흔했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근친상간은 어떠한 이유에선지 (문명의 발달 정도를 떠나) 어떤 문화에서든 비교적 상당히 일찍 금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금기 중의 금기라는 생각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자꾸 그 이야기에 유혹을 받고 있지만, 포르노그래피처럼 하체를 달궈주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달궈주는 영화라면 한 번쯤 쌓아두고 진지하게 고민하고픈 호기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