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서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작가
월간사진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사진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서정적lyric 그리고 기록적document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 상반된 별개의 영역을 가진 듯한 두 개의 단어지만 워커 에반스에게만은 종종 같이 묶여서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가 되었다. 서정적인 다큐멘터리lyric documentary 사진의 작가 워커 에반스.
| document
그의 사진에서의 기록적인 면모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공황 시절 미국농업안정국FSA이 그에게 건낸 과제는 명료했다. 미국 농촌의 현실을 ‘기록’해 올 것.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대공황에 대처하려는 루즈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를 역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겐 거절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누구라도 힘든 대공황 시절에 예술가에게 주어진 일자리였고, 무엇보다 사진이라는 매체로 그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할 수도 있는 기회였다.
FSA의 요청으로 미국의 농촌으로 길을 나선 에반스는 8x10인치의 커다란 카메라와 무거운 삼각대, 그리고 다수의 필름 홀더들까지 들고 나섰다. 대다수의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35mm 카메라나 그와 같은 작은 카메라를 선호하던 때 에반스가 19세기의 커다란 뷰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으젠느 앗제Eugene Atget의 영향이 컸다. 에반스는 앗제와 파리에서 가까이 지냈던 베르니스 애봇Berenice Abbott을 통해 수천점에 이르는 앗제의 프린트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에반스는 간결한 스타일과 켜켜이 쌓인 디테일로 사라져가는 파리의 곳곳을 기록한 앗제의 사진에 매혹되고 말았다. 에반스를 움직인 서정적이고 기록적인 스타일이 모두 앗제의 사진 안에 있었다.
1930년대 당시 사진은 아직 채 100백년도 안된 젊은 매체였고 그는 사진을 시작한지 10년도 안된 젊은 예술가였다. 사진은 여전히 예술 안에서의 한 자리를 인정받기 위해 고전하던 중이었고 매체 그 자체로서도 그 역할과 의미를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당시 사진을 아우르던 큰 흐름으로 한켠에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섬세하고 미려한 프린트로 예술로서의 가치를 넓히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무리의 사진들은 유럽에서 건너 온 구성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에반스의 선택은 둘 다 아니었다.
예술계로 발을 들여놓기 위해 사진이 기존의 여러 미술 장르의 아이디어와 형식을 빌려오는 동안 에반스의 선택은 오히려 이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예술이 아닌 뉴스필름, 타블로이드 신문, 그리고 그림엽서 등을 뒤지며 그곳에 실린 사진 속에서 사진 매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여기서 에반스가 발견한 직설적이고 명료하고 사실적인 정보가 당시의 순수예술사진에서는 부족했다. 그는 섬세한 프린트나 미료한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에반스는 사진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감상을 담아내고 향수를 불어 일으키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대신 그는 인류에게 오랫동안 남을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워커 에반스의 Allie Mae Burroughs의 사진은 대공황기의 대표적인 사진처럼 기억되고 있다. 허름한 목조 건물이 뒤에서 바짝 붙어 있는 간결하게 빗은 머리의 이 여인은 남루한 옷차림에 마른 체격을 하고서 잔뜩 긴장한 입술을 꼭 다물고 있다. 그 어디에도 이 여인이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롭다고 말하는 곳은 없다. 그녀의 모습을 가득채운 사진의 프레임은 그녀를 꽉 조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카메라가 그녀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할 수 있다. 이 여인은 분명 에반스가 무거운 삼각대를 설치하고 커다란 8x10인치 카메라를 올려놓고 필름을 신중하게 껴넣는 오랜 시간동안의 지루하고 조심스럽게 과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세심하게 지켜봐야만 했을 것이다. 에반스의 요구가 있었기도 했지만 그녀는 가까운 거리에서 바로 앞의 큰 카메라를 외면할 수도 없어 직시를 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안고 있던 불안감은 그대로 에반스의 사진에 빼곡히 잡히고 만다.
FSA 작업 중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은 이와 같은 인물사진 클로즈업에서 조차도 왠지 사람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녀가 처한 상황, 주변 그리고 시대의 상황이 더욱 더 크게 보인다. 커다란 네거티브에서 드러나는 부실하고 깔끄러운 목판, 얼룩진 싸구려 옷감, 마른 얼굴 사이에 패인 고단한 주름이 모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FSA 다른 사진들을 보면 단지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체의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더욱 분명해 진다. 외벽이 무너져 버린 벽난로, 진한 얼룩이 진 이발소 텅빈 실내, 싸구려 장식에 둘려 쌓인 허름한 의자, 남루한 목조건물들의 모습 외에서도 딱지가 앉은 맨발, 담배 얼룩, 지역 특색이 담긴 표지판, 건물 내외의 작은 디테일들 까지 기록하고자 했던 에반스의 의도가 여러 장의 사진에 나뉘어 담겨있다.
| lyric
1920년대 중반, 20대의 젊은 청년 워커 에반스가 파리에 갔을 때 그는 사진가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는 동안 여행객들이 들고 다니는 가벼운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는 했어도 유럽에 있는 동안 그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에게는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다행이겠지만) 그는 그 뜻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대신 유럽에서 틈틈이 키운 사진 매체에 대한 호기심과 1927년 뉴욕으로 돌아온 이후 만난 사진작가 랄프 스타이너Ralph Steiner를 통해 그는 사진으로 확고한 발걸음을 옮겼다.
1933년 에반스는 쿠바에서 머물면서 독재자 게라르도 마차도Gerardo Machado에 대항에 일어났던 저항을 담았다. 여기에서의 사진과 글이 함께 묶인 <The Crime of Cuba>은 에반스가 처음으로 편집을 맡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가 손수 고르고 정렬한 31장의 사진은 이 책에서 그의 사진은 글에 그림을 보태주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글과 같은 무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6년 에반스가 아직 FSA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작가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를 만나서 알라바마주의 헤일카운티로 향하게 된다. 여기서 에반스는 다시 한번 31장의 사진을 고르고 순서를 정했지만 그 자신의 말은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그는 사진만으로 냉철하게 남아있는 반면 에이지가 그의 격렬하고 신랄한 말을 더했다. 에반스와 에이지가 손에 든 매체와 그 언어는 달랐지만 그들은 친한 친구가 되었고 두고두고 글과 사진이 완벽하게 조화된 저널리즘의 표본을 만들어 냈다. 에반스의 조용한 사진은 에이지의 열정적인 글만큼 여러 이야기를 전달했고 많은 감정을 일으켰다.
에반스가 '포츈Fortune'지에서 일한 1945년에서 1965년까지 20년 동안의 그의 프로젝트들은 많은 점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다. 그의 이전의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고 상업잡지라는 인식이 포츈지에서의 프로젝트를 폄하하는 그늘을 드리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편집장이 된 1945년부터 그가 직접 주제를 정하는 레이아웃을 짜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고르는 여러 프로젝트들을 했다.
에반스는 1938년 ‘Walker Evans: American Photographs'라는 제목 아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당시 어느 사진가도 누려보지 못한 사진가에게 처음 주어진 솔로전시회였다. 그 이후에도 그는 여러 대형 미술관들에서의 전시회를 가지는 사진작가로서 최고의 행운을 누렸지만 왠지 그는 항상 전시회보다 책을 더 욕심내는 사진작가였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수집되고 무작위의 순서로 관람이 이루어지는 전시회보다 맨 앞장부터 차곡차곡 이야기가 쌓여가는 선형의 구조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에반스는 늘 사진을 선정하고 그 순서를 정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각각의 사진이 가진 간결하고 관조적이며 담담한 기록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각고의 고민 끝에 늘어진 사진들이 등을 맞대고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베어 나왔다. 마치 에반스가 작가로서 글을 쓰고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한 사진이 되었다. 그렇게 그의 사진은 우리의 동정심이나 선정성을 유발하지도 않고, 직설적이지만 산파적이지 않으며 객관적이지만 냉소적이지 않은 서정성을 띄게 되었다. 에반스의 사람이 있지 않은 풍경에서 조차 남겨진 흔적들만으로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사람의 심정을 가늠해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엔 Allie Mae Burroughs 여인의 모습이 남루한 건물과 허름한 옷을 넘어 확연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단지 여인의 외형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여인이 처한 고충과 심경이 더해지며 그녀는 한 명의 사람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 미국인,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는 표상이 된다. 객관적으로 남은 채로 사람들의 감정을 아우르는 서정적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