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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귀향과 창업의 꿈을

동시에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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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우수창업사례 : 대구, 농부창고 / 대표 황영숙

 

| 고향으로 돌아가는 먼 길

 

“내 아이가 흙을 밟고 자연과 가까이 살게 하고 싶어서 귀향했어요.”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황영숙 대표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일을 찾아 바로 상경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꿈은 언제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결혼할 때 남편에게 약속을 받을 만큼 황 대표에게는 소중한 꿈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이 예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어려웠다.

 

예천 사람 황영숙 대표는 서울에서도 잘 적응했다. 일본어를 잘 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자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인정도 받고 급여도 계속 올랐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행복했지만, 살림이 나아지고는 있어도 삶이 나아지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월급은 오르고 있어도 자신이 정체되어있다는 느낌에 황영숙 대표는 처음으로 창업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생각은 곧 결심이 되었고 결심은 바로 실행으로 이어졌다. 당시 아직 20대였던 황 대표가 도전을 시작한 창업 분야는 카페였다. 카페와 바리스타가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망 있다고 또 준비하고 그러니까, 내가 틀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창업이란 것에 대한 불안감도 없지 않으니까 그런 안도감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황영숙 대표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카페 운영의 경험을 배워야겠다 싶어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2년 사이에 카페 수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동네 골목까지 우후죽순으로 카페가 들어서고 또 사라지고 하는 것을 보며 모두가 바라는 길을 가는 것이 결코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페에서의 일이나 바리스타로서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했던 2년이었다.

 

카페에 미련을 접으며 황영숙 대표는 다시 새로운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황영숙 대표에게 점점 커가는 아이가 보였다. 자기 집에서 조차 마음대로 뛰어놀지 못하고 아파트와 차들 사이에 갇혀 있는 아이를 보며 이젠 정말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 젊은 참기름의 탄생

 

황영숙 대표의 어머니는 고향 예천에서 30년 넘게 농산물 거래를 하셨다. 그 중에는 예천의 특산물인 참깨가 유독 많았다. 배수가 잘 돼서 참깨에 적합한 토양을 가진 예천은 오래전부터 좋은 참기름으로 유명했다. 아직 젊은 30대의 황 대표에게 다소 낯선 아이템이었지만, 젊기에 누구보다 새롭게 만들고 알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국 그녀는 서울의 전 재산을 정리해서 고향 예천으로 돌아왔다.

 

귀향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정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창업은 생각보다 망막했다. 무엇보다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1년이면 끝날 것 같았던 창업 준비는 어느덧 3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의 황 대표도 점차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가 웬만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는데, 그때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때 창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지인이 신사업창업사관학교를 소개해주었다.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농업창고’가 점차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점포 체험을 통해서는 ‘농업창고’를 어떻게 운영해야할 지에 대한 계획이 잡히기 시작했다. 3년을 막혀있던 창업의 채증이 드디어 길을 내고 있는 듯 했다. 예천에서 사관학교가 있는 대구까지 6개월 동안 매일 3시간을 오가야 했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제가 살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황영숙 대표는 꿈이룸 점포 체험을 하는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행운으로 생각한다. 황 대표는 동기 한 명 한 명을 모두 배울 점이 있는 스승으로 삼았다. 평소에도 사람을 좋아하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의 교육을 통해 차별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운 후에는 ‘농부창고’의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 황 대표가 찾은 ‘농부창고’의 차별성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무조건 품질이었다. 건강의 기준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해썹(HACCP) 기준에 맞추어 ‘농부창고’의 생산 시설을 준비했고 결국 인증을 받았다.

 

“건강하고 맛있는 기름을 만드는 것이 저의 철학이에요.”

 

황영숙 대표의 품질에 대한 기준은 오히려 해썹보다 높다. 황 대표는 품질을 지키기 위해 중국산 깨를 쓰지 않고 예천의 지역 농산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른다. 초기에는 계약재배도 했지만, 관계 유지를 위해서 깨 작황이 좋지 않을 때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포기했다. 그 이후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좋은 깨를 그때그때 구매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좋은 깨를 재배하는 농장을 확보하는 데는 30년 이상 지역에서 농산물 거래를 하셨던 어머니가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양봉을 하는 외삼촌 덕분에 ‘농부창고’에는 꿀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언니의 뜻에 공감하고 바빠진 일손을 돕기 위해 황 대표의 동생 가족까지도 서울에서 예천으로 내려왔다. 결국 ‘농부창고’를 중심으로 4대 가족이 예천에 가까이 모여서 살게 되었다.

 

‘농부창고’는 디자인에게도 공을 들였다. 참기름, 들기름, 꿀의 용기와 레이블도 젊은 감각으로 디자인했다. 여기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다시 큰 도움을 주었다. 공단의 디자인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능력 있는 디자이너를 소개 받아서 지금의 디자인들을 완성했다.

 

이제 황영숙 대표는 원래의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아이를 건강한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건강한 기름과 꿀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오랜 꿈도 드디어 이뤘고 부모님과도 형제와도 가까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외동이라 늘 걱정이 많았던 아들은 이제 대가족 속에서, 그리고 산과 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창업과 귀향이라는 염원을 함께 이뤄준 ‘농부창고’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황영숙 대표가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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