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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 못 한 디앤 아버스

월간사진

뛰어난 예술가의 비극적인 결말에 유난히 조급함을 드러내는 미디어들에게 디앤 아버스는 충분히 적절한 소재가 되어 줄 수 있는 예술가중 한 명이다. 이미 아버스의 이름이 많이 알려진 1960년대 말에도, 그녀는 여전히 사진으로 인한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제작해서 사인을 하고 전달까지 했던 한정판 포트폴리오도 단 3개밖에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바로 전의 상황은 부정적인 것보단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뉴 다큐먼트 New Document’에서 아버스의 사진이 최초로 소개되면서 그녀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잡지 <에스콰이어>와 <바자>의 일도 정기적으로 있었고 <보그>, <뉴욕>, <뉴스위크>등 수많은 유명 매체들이 그녀의 사진을 실기 원했다. 디앤 아버스가 거절하긴 했지만 1971년 초 워커 에반스는 그녀가 예일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주기를 부탁했고 당시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1972년 여름에 있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소개될 예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디앤 아버스에겐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마빈 이스라엘이 있었고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 큐레이터로서 영향력이 컸던 존 자코우스키도 그녀의 사진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디앤 아버스는 1971년 여름,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손목을 그어 욕실에 쓰러지면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디앤 아버스에 관한 가장 극적인 면은 그녀가 죽기 바로 전에 몰려있는지 모른다. 비슷한 이유로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그들의 죽음에 이르러 극의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의 죽음이 분명 그 사람 삶에서 가장 비참한 지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될 수 있는가는 다시 생각을 해볼 만하다. 사진가 디앤 아버스를 다룬 영화 <퍼>를 만든 감독 스티븐 세인버그의 고민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고 과연 실존했던 인물의 극적인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전기영화가 한 사람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 긴 부제를 달게 된다. ‘디앤 아버스에 관한 가상적 조명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감독은 ‘디안 아버스의 꿈’으로 봐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스티븐 세인버그 감독이 디앤 아버스에 관하여 가장 궁금했던 점은 그녀가 후반기의 삶을 선택한 이유와 과정이었다. 아버스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모피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러섹스백화점을 가진 유태계의 부유한 부모의 자녀였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도 그녀 집안의 부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8년까지도 그녀는 35세의 두 자녀가 있는 어머니였고 패션사진가로서 명성과 수입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앨런 아버스의 아내였을 뿐이었다. 그러했던 그녀가 그동안 그녀가 누려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로 점점 관심을 옮겨가며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진 작업을 해나가게 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로 한 감독의 결실이 <퍼>이다.

영화는 많은 이유에서 퍼트리샤 보스워스가 1984년 처음 펴낸 디앤 아버스에 관한 전기인 <다이앤 아버스 Diane Arbus: A Biography>에 빚을 지고 있다. 영화 초기에 밝히듯이 이 책은 영화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각본을 쓴 에린 C. 윌슨도 영화를 완성해가며 책의 저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퍼트리샤 보스워스는 이 영화의 제작도 맡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책 <다이앤 아버스>와 영화 <퍼>는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책과 영화의 차이를 넘어서, 각기의 제목에서도 표기하듯이 하나는 ‘전기A Biography’이고 다른 하나는 ‘디앤 아버스에 관한 가상적 조명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이다. 간략하게 책이 ‘영화의 원작’이라고만 말한다면 수많은 오해가 생길 것이 너무 뻔하다.

스티븐 세인버그 감독은 퍼트리샤 보스워스의 책이 특히 1958년을 중점으로 해서 35세의 주부였던 아버스가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사진가로 변화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작가가 실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간 정성에 비하면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소홀했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다. 영화 <퍼>는 디앤 아버스(니콜 키드먼)가 라이오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만나면서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를 대칭되는 미술과 무대, 인물과 소품 등을 활용하여 한정된 시간 안에 상징적으로 공을 들여 풀어내고 있다.

라이오넬은 디앤 아버스가 실제로 가까이 지내면서 큰 영향을 받았던 몇몇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압축된 창조물이다. 아버스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둘 있는데 한 명은 그녀의 사진 스승인 리젯 모델이고 다른 한 명은 화가이자 여러 중요 매체에서 아트디렉터를 맡았던 마빈 이스라엘이다. 마빈 이스라엘은 아버스가 정신적으로 의지했음은 물론 아버스에게 예술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라이오넬은 아버스을 압도하고 이끌면서 리젯 모델과 마빈 이스라엘이 겹쳐지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간다. 아버스에게 끊임없이 카메라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알아가기를 가르치는 이도 라이오넬이다.

그리고 털로 뒤덮인 라이오넬의 외모에서 두드러지듯이 그에겐 디앤 아버스가 사진에서 자주 다루었던 흔히 ‘기형인’이라거나 ‘프릭스freaks’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아버스는 뉴욕에서 ‘프릭스’를 마주치면 말을 걸고 미행하면서 결국 그들의 생활의 중심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일면의 생활도 공유했다. 비범한 외모의 라이오넬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영화 속 아버스의 모습은 ‘프릭스’를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았고 같은 사람으로서 대했던 아버스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라이오넬이 항상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며 그의 말투에 품위가 남아있는 이유이다.

전혀 다른 과정과 의미를 지닌 디앤 아버스의 부모가 판매하는 모피와 라이오넬의 가발과 털은 기가 막힌 대립을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압축적인 상징성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가장 커다란 것은 아무래도 디앤 아버스가 1958년 35세를 기점으로 어느 날 갑자기 위층 남자가 이사를 오면서 바뀌어 가듯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엔 관해서는 아무래도 두꺼운 분량을 여유를 누렸던 퍼트리샤 보스워스의 책이 좀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다. 디앤 아버스가 어렸을 때 어느 날 센트럴파크에서 산책을 하다가 판잣집에 사는 노숙자를 보았다. 그런데 아버스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 그러한 경험들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 나머지 아버스가 그와 같은 대상들을 바라보는 것조차 금지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럴수록 커가면서 ‘그들’에 관한 관심을 키워온 것을 책은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화에선 낡은 필름을 통해 아버스의 유모가 아버스의 눈을 급하게 가리고 얼굴에 큰 반점을 가진 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러한 설명을 대신하고 있지만 책에 비한다면 상당히 제한적으로 표현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디앤 아버스의 사진이나 예술적인 재능도 갑작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다. 아버스의 청소년기에 미술지도 교사였던 빅터 다미코가 화가가 될 것을 권했던 것처럼 아버스는 일찍부터 예술적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아버스가 남편 앨런 아버스와 같이 ‘아버스 스튜디오’를 하면서 패션사진의 명성을 쌓을 때도 그녀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영화 속에서 ‘조수’로서의 아버스의 역할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 중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아버스 스튜디오’에서 아버스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처럼 보인다. 실제로 패션사진을 같이 찍을 당시 카메라와 조명 등 기술적인 것은 앨런이 담당했지만 모델들의 머리와 화장, 의상은 물론 사진의 전체적인 콘셉트나 아이디어는 주로 아버스가 도맡아 했다고 한다. 남편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아내인 아버스가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사진작가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아버스가 ‘아버스 스튜디오’의 일을 그만두고 혼자서 작업을 해나가기 시작하면서 앨런 아버스는 패션사진계에서 조금씩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이 묘한 시점에 그는 점차 사진을 그만두고 배우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스티븐 세인버그의 영화 <퍼>와 퍼트리샤 보스워스의 전기 <다이앤 아버스>는 처음부터 일대일로 마주 대놓고 비교하기엔 어려운 점들이 많다. 허구와 실제라는 것도 다르고, 영화와 책이라는 매체도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스티븐 세인버그와 퍼트리샤 보스워스의 디앤 아버스에 관한 관심의 중심 자체가 다른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보스워스는 디앤 아버스 외에도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말론 브랜도에 관한 전기를 펴내는 등, 한 인물의 전체적인 삶을 조명하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반면 세인버그는 그의 전작 <세크리터리Secretary>처럼 한 인물의 특정적인 시간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유명한 현대의 사진가면서도 여전히 많은 것이 베일이 쌓여있는 디앤 아버스에 관한 영화 <퍼>와 전기 <다이앤 아버스>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 한 인물에 대한 완벽한 풀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다만 전기와 같은 그녀에 대한 기록과 영화와 같은 그녀에 대한 상상을 모으고 다듬어 아버스의 일생과 내면 속으로 조금이라도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아버스가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그리고 보여주고자 했던 그녀의 고민과 생각에 더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