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요한계시록에서 창세기로 이어진,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40여년의 여정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빔 벤더스 감독, 2014

 

아직도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나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Ueber Berlin, 1987)>를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장편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쿠바의 재즈 음악가들에 관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이나 독일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에 관한 <피나 (Pina, 2011)>와 같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지속적인 다큐멘터리 작업들만으로도 그에게 내려진 '작가(auteur)‘라는 칭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최근에 완성한 다큐멘터리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the Salt of the Earth, 2014)>을 들고 돌아왔다.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은 20세기의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사진가 중의 한 사람인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벤더스 감독이 살가두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의외라기보다는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빔 벤더스 감독이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80년대 초부터 ‘Pictures from the Surface of the Earth’ 작업을  20년 이상 이어간 데다 여러 권의 사진집까지 낸 사진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늦었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다큐멘터리 제목에 붙은 ‘제네시스(Genesis)’는 살가두 작가가 2004년부터 8년간 시베리아, 파푸아뉴기니, 알라스카, 마다가스카르, 콩고 등 세계 35개국을 돌아다니면서 태초의 자연 상태를 담은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실 그가 ‘제네시스’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잊고 지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제네시스’는 마주하면서 사실 이전의 살가두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경탄하기보다는 당혹해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많은 사람들에게 90년대 초기에 완성된 프로젝트 ‘Workers: Archaeology of the Industrial Age’에서 특히 브라질의 광산과 광부들의 인상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사진가이다. 5만 명이 넘는 광부들이 어떤 기계들의 도움도 없이 맨손으로 돌을 나르고 위태로운 사다리를 줄줄이 오르는 치열한 현장은 살가두가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말하듯 ‘온몸의 모든 털이 곤두서는’ 경탄을 자아냈다. 그 이후로도 살가두는 90년대 지구상에서 벌어진 가장 참혹한 사건들인 르완다와 콩고, 그리고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참상을 고발하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인류의 가장 아픈 치부를 드러내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의 명성은 ‘제네시스’ 이후의 그에게는 오히려 짐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의 카메라는 더 이상 지구의 가장 참혹하고 잔인한 현장이 아니라 지구의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을 바라보는, 완전한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서 있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던 포토저널리스트가 ‘자연과 풍경이나‘ 찍는 한가한 작업에 안주해버렸다는 비판도 들려왔다.

 

다큐멘터리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은 제목이 주는 오해와 달리 프로젝트 ‘제네시스’에만 관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학도였던 세바스치앙 살가두가 어떻게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으며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어떠한 길을 따라 수십 년을 한 발 한 발 나아갔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차근히 보여주고 있다. 원제 ‘세상의 소금(the Salt of the Earth)'에 살가두 작가의 최근 십년간만을 대변할 뿐인 ’제네시스‘를 붙여서 개봉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에서 살가두의 프로젝트들은 시간 순으로 천천히 나열되면서 9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르완다와 콩고에서의 비극을 촬영한 사진들로 이어진다.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어두운 이미지들의 연속이 힘겹게 끝나는 시점이 되면, 브라질의 광산에서 느꼈던 강렬한 힘과 은유적이었던 폭력은 어느덧 인간의 잔악성과 원초적인 폭력만 남게 되는 절망적인 참담함으로 바뀌게 된다. 학살된 시체가 길거리에 쌓여서 썩어가고 질병에 쓰러진 시체 더미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사진 끝에 살가두 작가의 커다란 눈빛이 비추인다. 그리고 그가 관객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인간성에 깊은 회의를 보이고 ‘인류는 구원 받을 가치도 없다’고 말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우리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남은 건 요한계시록에서 명시한 대로 심판의 날만 기다리면 곧 인류의 종말이 당도할 것만 같았다.

 

“My soul was sick." 그렇게 살가두도 관객들도 마음이 몹시 치지고 절망적인 순간에 살가두는 모든 사진을 내려놓고 브라질에 있는 자신의 6제곱킬로미터의 농장으로 돌아간다. 농장이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파괴된 자연만 남은 벌거숭이 산이었을 뿐이다. 심신이 지친 살가두에게 40년도 넘게 그의 인생의 반려자이자 사진의 조언자였던 아내 렐리아는 나무를 가꾸자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를 키우자던 부부의 프로젝트 ‘Instituto Terra'는 2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는 대규모 산림계획으로 커지게 된다. 이젠 브라질에서 국립공원이 된 살가두의 농장 한가운데 숲에 평화롭게 앉아있는 살가두를 바라보면서 그에게도 관객에게도 이 시간과 이 숲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했던 휴식이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살가두는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 모두를 치유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작으로 프로젝트 ’제네시스‘를 결심하게 된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수없이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인류가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크나큰 과오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죽음과 질병이 만연한 곳으로 번번이 돌아갔다. 결국 그곳에서 그마저 상처를 입고 말았으나, 이제는 스스로가 치유를 받은 경험에 비추어 인류가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태초의 자연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동물과 자연,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미지 속에서는 19세기의 그러한 사진들이 그랬던 정복과 우월감이 아닌 보호의 의지와 존경의 시선이 읽힌다. 그러한 점에서는 ‘제네시스’는 독립된 프로젝트라기보다 상처에서 치유로 어렵게 넘어간 살가두 작가의 기나긴 여정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삶 전체가 그가 평생을 매달린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였다. 

 

빔 벤더스라는 동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가 세바스치앙 살가두라는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예술가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빔 벤더스는 목소리만 남기고 살가두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명성을 높여줄 작품에만 치중하는 대신 다른 예술가의 명성만 돋보이게 하는 작업에 이토록 신명나게 매달리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빔 벤더스는 세바스치앙 살가두가 모든 조명을 받아도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가진 작가라고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벤더스 감독이 그 가치를 미리 알고 있었고 그리고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를 보고나면 많은 관객들이 그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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