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사진, 영화를 만나다 / 구본창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사람을 바라보는 영화, 사람을 돌아보는 사진
구본창 사진작가 인터뷰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1985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 구본창 작가가 여타의 다른 유학파 1세대 작가들과 함께 한국사진계에서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수없이 들어왔던 바 그대로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그간 이뤄온 성과와는 상관없이 그전까지의 한국사진은 다소 특정장르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었고 그 주제의식 또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집단적인 사고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구본창 작가가 개인의 자의식과 주관적인 감성을 새로운 그릇에서 담아내 보여주면서 -드디어- 한국사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영화속 사진분야에서 그가 한 일은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1980년대까지 사진을 예술보다 기술에 가깝게 여기던 전반적인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화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기사였다. 제작자가 그렇게 생각했고 감독도 그랬고 촬영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그러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80년대의 현장에 구본창 작가가 유학후 곧바로 뛰어들었고 인식의 변화는 안팎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Q: 1985년에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셨고 그 이후 영화제작에 참여하셔서 사진을 찍으셨는데 어떤 작품들이었죠?
A: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처음이었고요, 그리고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님이 그때 찍은 황신혜씨의 사진을 보고 맘에 들어 하셔서 태흥영화사 작품들, 특히 임권택 감독의 작품들을 많이 했죠. 태흥쪽에선 제가 태흥영화사 작품만 하길 원했고 그래서 다른 영화사에서 들어온 제의를 몇 번 사양하기도 했지만 배창호 감독 작품들은 그래도 꾸준히 했어요. 처음 포스터 작업을 한 영화도 그랬지만 영화촬영지 자체를 처음 기웃거리게 된 것도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경영학부까지 학교를 같이 다녔던 배창호 감독 때문이니까요. 그렇게 촬영현장에 맨 처음 갔던 게 배감독의 데뷔작이었던 <꼬방동네 사람들>(1982)때였죠 아마.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인 <개그맨>(1988)도 했지만 태흥쪽에선 제가 멜로와 드라마적인 것을 잘 표현한다고 해서 주로 그런 영화들을 했죠. 액션영화같은 경우는 제가 생각해도 저에겐 맞지 않았고 태흥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한 듯해요. 아마 <장군의 아들>(1990,91,92)시리즈 정도가 예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건 그래도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니까요.
그렇게 임권택 감독과는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을 거쳐서 <취화선>(2002)때까지 함께 작업을 했어요. <미지왕>(김용태 감독, 1996)을 위한 작업이 제겐 좀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참 유별나고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했었죠. <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 2002)가 가장 최근의 작품인데 그 일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처음 80년대에 귀국후 당시 한국에서 포스터 사진 작업 환경은 어땠나요?
A: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포스터를 따로 촬영한다는 인식이 없었고 영화 촬영 중에 생긴 스틸사진중 쓸만한 것을 하나 골라 쓰고 그럴 때였죠. 그래서 초기에는 나도 스틸 찍는 기사들처럼 따라다니면서 틈을 봐 찍곤 했어요. 촬영이 진행되면 기회를 보면서 찍다가 촬영감독님이나 조명감독님에게 자주 혼나기도 했죠. ‘거기 셔터소리 내는 거 누구야?’ 뭐 이러면서요. 그게 바뀌기 시작한 게 <아제 아제 바라아제>(임권택, 1989)이후부터였어요. 그것도 완벽하진 않아서 영화사에서나 이태원사장은 사진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제가 포스터를 찍는 사람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었지만 그때까지의 관습 때문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기획이나 스텝회의에 사진작가가 참여하는 일도 없었고. 그러던 것을 임권택 감독님이 언제부턴가는 ‘이작가가 오늘은 반나절동안 스텝들을 데리고 사진을 찍어’, 하면서 시간을 따로 내어주셨죠. 그렇게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다 <태백산맥>을 찍을 때쯤엔 자리가 제대로 잡혔죠. 한때는 그렇게 어렵게 포스터 사진이 독립된 중요성을 확보한 때도 있었지만 요새는 오히려 포스터가 상업적인 이유로서의 중요성이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서 굉장히 많은 예산과 인력이 들어가는데 조금은 옛날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Q: 영화 포스터 사진을 촬영하시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은 어떤 점이었나요?
A: 감독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한 장의 사진으로 말해보자 해서 시나리오를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태백산맥>에선 이데올로기 때문에 형제였던 염상진(김명곤)과 염상구(김갑수)의 길이 갈리고 안성기씨의 캐릭터가(김범우) 그 중간에 갈등하는 위치에 있었죠. 그래서 김범우를 중심으로 두 인물을 양쪽에 놓고 그 뒤로 갈림길이 보이도록 했어요. 그리고 안성기씨 앞에 불을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게 영화의 스토리를 읽고 나니 불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포스터를 찍을 때면 내가 감독이라면 어떻게 할까하는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처음에 없던 그런 생각들이 생기더라고요. 나 나름대로 주인공을 해석하려고 생각도 많이 하고요.
Q: 영화포스터 촬영을 하시면 사진작가와 영화감독이 현장에 공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의 작업에 관하여 어떤 식의 교류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A: 당시 영화 포스터 촬영이 보통 전체적인 영화 촬영 일정 중간쯤에 해서 이뤄지는데 그렇게 하면 제가 영화를 이해하고 감정을 쌓고 그러는데 도움을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포스터 촬영을 하면서 내가 끌어낸 아이디어에 감독이 흥미를 가지고, 특히 자주 작업을 같이 하신 임권택 감독님이 가끔은 제 아이디어에 기반해서 시나리오를 조금 고쳐서라도 영화에 반영하셨는데 그럴때면 사진작가로서 보람을 느꼈죠. <태백산맥>에서 불을 지르는 장면이 영화에서 반영이 되었고 임권택 감독님의 다른 작품인 <축제>(1996)를 찍을 때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축제>가 장례식을 중심으로 한 얘기라 포스터도 내내 가라앉은 분위기로 구상한 상태에서 모든 배우들이 단체로 나오는 포스터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배우중의 한명이 농담을 하면서(‘아니 어디 초상났어?’) 갑자기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어요. 순간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는데 그 한 장이 수많은 어두운 표정들의 사진보다 좋더라구요. 결국은 그 사진을 포스터에 쓸 것으로 고르고 그리고 똑같은 상황을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대로 재현하셨죠. <취화선>때에도 장승업 정도의 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고민을 계속 하다가 결국에 낸 아이디어가 지붕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었거든요. 그 장면이 그대로 포스터와 영화에 쓰였죠. 사진작가와 영화감독이 그렇게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게 즐겁고 재밌었죠.
Q: 1980년대부터 사진전시회를 하셨지만 특히 1990년대에는 개인적으로 사진작품 활동도 활발히 하셨던 때인데 그렇게 90년대는 물론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영화가 인생을 얘기하고 우리들의 삶을 보여 줄 수 있는 장르의 하나로서 일련의 사진들과도 굉장히 밀접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난 시간이 남긴 흔적 같은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대상물에 남겨진 것이라던가 사람 얼굴에 있는 흔적도 그렇고요. 그런데 영화는 사람이 그 흔적이 남기고 담게 되는 인생의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려서 보여주니까요. 물론 내가 직접 감독이 되어서 연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작업에서 사진을 맡으면서 감독이 하는 비슷한 고민의 과정을 거치게 되잖아요. 영화 현장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한때는 영화를 직접 연출해 볼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했었죠.
Q: 영화감독이 될까도 고민을 하셨다니까 더욱 더 궁금해지는데 만일 영화를 연출하고 싶으시다면 영화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A: 저는 주로 다큐멘타리를 즐겨보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의 힘든 인생사라든지 가족등 인간에 대한 다큐들이 좋더라구요. 상처 입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지만 그걸 또 극복하고 스스로 치유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요. 예전에 EBS에서 개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EIDF에 출품되었던 <형제Compadre>(2004)라는 다큐를 EBS에서 방영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감독인 미카엘 비스트룀Mikael Wiström은 스웨덴 사람인데 한 30년전인가 페루에 촬영차 갔다가 일사병에 걸렸을 때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다니엘이 도와주어서 그 인연으로 미카엘이 페루를 자주 방문하면서 계속 가깝게 지내게 되요. 지금은 이제 다니엘도 아내와 세남매를 둔 가장이 되었는데 여전히 가난에 찌든 삶을 살죠. 소아마비가 있는 다니엘은 택시 비슷한 교통수단을 몰며 돈을 벌고, 아내는 부잣집에 가서 집안일을 해주고요, 그리고 다니엘의 장녀는 페루 관광지에서 조그만 기념품들을 만들다 돈을 벌기 위해 5000km거리 떨어진 브라질 도시로 나가려고 하고, 둘째 딸은 만나는 남자 때문에도 그렇고 이 가난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러다 장녀가 브라질로 떠나기 전에 온가족이 다니엘이 어렸을 때 가난해서 도망쳐 나왔던 고향집을 방문해서 그곳에서 모두 부둥켜 앉고 우는데 그게 너무 감동적이고 좋았어요. 그런 내용을 담아서 그렇게 보여줄 수 있는 그 감독도 인상적이었고요.
Q: 그런 다큐멘터리를 보시면 보도사진을 해보고 싶으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지는 않으신가요?
A: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제가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제일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곳에 가서 찍는 건데 그래서 늘 관심을 가지면서 기사와 사진을 다 모으고 있거든요. 다만 그것에 관해 보통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진들이란 것이 대부분은 사실만을 전달하는 보도성의 것들이 많아서 저는 한분 한분을 모시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해서 다른 접근 방식으로 찍고 싶어지더라구요. 60년 가까이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닮아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 안엔 개인사와 한국사의 고통과 상처가 그대로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는지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기회를 계속 찾고 있죠. 기회가 온다면 스틸사진을 찍든 혹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큐영화를 찍든 꼭 하고 싶어요.
Q: 평소엔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세요?
A: 츠카모토 신야塚本晋也의 <쌍생아雙生兒: そうせいじ>(1999)같은 영화도 형식과 영상도 독특하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것들을 자연스럽게 담아서 좋았죠. 그래도 보통은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굴곡을 많이 표현해주고 인물의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다루는 작품들을 좋아해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은 우리들의 숨겨진 내면들을 들쳐주어서 좋았어요. 그의 영화의 모든 표현방식에 동의를 하고 있진 않지만 일부는 불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것들이 우리들의 모습이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인 <악어>(1996)를 보고서 그때부터 매력을 느꼈었는데 제가 친분만 있다면 먼저 포스터 작업을 제안하고 싶을 만큼 그의 창의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Q: 김기덕 감독과 구본창 작가님이 작품을 같이 한다면 대중들이 의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 한데요.
A: 김기덕 감독은 사람들이 가진 상처를 계속 다루고 있는데 저도 그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거든요. 마찬가지로 제가 인물사진중에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의 작품들을 많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걸 의외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상처라든가 세월이 남긴 흔적들을 항상 유심히 관찰하기 때문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이나 다이앤 아버스의 작품들에 애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영화를 결국 한 장의 포스터 사진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결국 그 둘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사진과 영화가 서로 다른 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A: 영화는 일단 사진이라는 매체보다도 스토리와 움직임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사진이 보통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면 영화는 집단적으로 움직여야 하잖아요. 제가 영화현장을 따라다니면서도 느낀 것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군중을 이루어서 같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화시장이나 투자한 자본의 영향까지 고려하면 영화는 굉장히 큰 집단의 산물이 되는 거죠. 그에 비하면 사진은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고 작업하는데 작가 개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고 볼 수 있죠.
또 하나는 일반적으로 영화와 사진이 각기의 특성에 맞추어 주로 다루어 질 수 있는 소재에 정착한 각자의 분야라는게 있잖아요. 사진이 오브제 혹은 사물이라고 하는 것을 보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반면 영화에는 적당하지 않죠. 영화로는 두시간동안 포크만 보여주어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지만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의 경우처럼 사진은 그게 가능하잖아요. 대상물로서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면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힘이 사진에겐 있죠.
대신 영화는 사람의 삶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당수의 영화들이 거의 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로 집중하는 것이겠죠. 영화에 배우, 즉 사람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영화감독이 배우를 통해서 그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반면 사진은 인물이든 사물이든 보다 다양한 매개체에서 끌어올 수 있죠.
Q: 미술에서 사진과 영상은 서로의 기능과 형식을 복제하고 모방하며 그 사이의 경계를 무력하게 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일 사진과 영상과의 구분을 확실히 해 두어야할 이유가 아직도 있다면 어떠한 것이 그 기준점이 될 수 있을까요?
A: 일반적인 관점에서 간단히 말하자면 사진은 인쇄물을 통한 매체가 될 수 있고 영화는 영사기를 통해 접하는 것이라는 점도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러한 점에서 사진은 사진을 보는 시선과 시점은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지만 영화는 일단 어두운 극장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것이 있으니까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계에서 오가는 이야기들과 달리 대중들에게 사진과 영화의 경계는 아직 확실합니다. 특히 대중이 두 매체를 어떻게 접하고 활용하는지를 보면 더욱 자명해지는데, 사진이라 것은 누구나 다 찍을 수 있지만 예술사진이 대중에게 폭넓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영화는 사진보다는 일반적이지 않은 매체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굉장히 대중적인 예술로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관객으로서 안고 있는데, 어떠한 점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주인공, 스타시스템때문이죠. 사람들이 꿈꾸는 모습과 역할들을 스타들이 주인공으로서 영화에서 대신 해주니까 대중들이 환호할 수밖에 없죠. 사진중에도 스타들을 찍은 사진들에 유독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잖아요. 그럼에도 스타의 사진이 그들이 출연한 영화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관객들의 꿈속엔 배우들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데 사진에선 대부분 그걸 바로 읽어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담기에 유리한 영화가 보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것이겠죠. 그것이 영화에겐 큰 힘이 되어서 그러한 차이를 만든다고 봐요.
구본창 작가는 한국사진계에서 변화를 일으켰던 만큼 한국영화계 안에서 사진에 대한 인식변화가 일어나는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증언대로 지금 영화에서 포스터에 쓰이는 사진의 중요성은 그가 처음 작업을 시작하던 20여년전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다. 이제 단 한 장의 사진을 담은 포스터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영향력을 제작자들이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만큼 사진의 힘을 그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한 장의 사진이 두 시간의 영화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음에는 수많은 영화를 단 한 장에 풀어내려고 노력했던 구본창 작가도 동의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영화와 사진이 서로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마도 왕성한 사진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면서도 그가 여전히 영상으로 하는 작업에 대한 꿈을 따로 꾸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가지고 이제와서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하는 것만큼 무모한 것도 없다. 하지만 사진계보다 오히려 영화계에 일찍 관여한 듯한 구본창 작가가 당시 주변사람들의 권유대로 사진작가가 아닌 영화감독이 되었다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것들을 보여주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진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두 시간 동안 도자기나 쓰다 남은 비누만 보여주거나 허리가 잘린 고등어, 봄까지 방치된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들, 깊이 고개숙인 사람의 목 뒷덜미, 창살에 갖힌 두루미, 더운 날에 등에 눌려 붙은 머리칼등 언뜻 의미없어 보이는 사물들만 나열해서 장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적어도 그는 배우 없는 영화라는 것을 꿈꾸지 않고 있다. 결국 그는 방법과 소재에서 다른 선택을 해야할 듯 여겨지는데 직접 밝힌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 남아있는 욕심을 들으면 만일 감독이 되었다면 사람의 갖가지 삶을 직접 살피고 다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다만 한가지 끝까지 남아있던 궁금증은 사람의 삶을 깊고 감동스럽게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구본창 작가의 말과는 달리 다소 의아스러울 정도로 그의 사진속에선 사람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사람이 쓰는 물건이라든지 우리 주변에 놓여진 사물들, 아니면 벽에 달라붙어 죽어버린 담쟁이 덩쿨이나 박제된 곤충처럼 숨이라곤 붙어있지 않는 대상들이 대부분들이다. 사람이 나오는 경우라도 뒷모습이 되거나 얼굴이 천이나 마스크로 가려져 어찌보면 사람이 그의 다른 소재들처럼 사물화되어 버린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히 얻어졌다. 그의 사진속의 사물을 오랜동안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것이 죽은 사물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사람이 사물화된 것이 아닌 마치 영화속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의자처럼 사물이 의인화되듯 느껴졌다. 구본창 작가는 영화와 사진은 모두 배우가 됐든 오브제가 됐든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했다. 그럼 배우는 연기를 하는 직업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고 오브제는 단순한 사물을 넘어선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영화와 사진이 다른 것이기에 각각에 대해서 전혀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구체화하고 있는 구본창 작가이지만 그 점에 관한한 영화에 대해서든 사진에 대해서든 그는 공통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