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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틈을 바라보고, 틈을 넘어가다

​월간사진

Acceptance of the Gap

An Interview with David Hilliard 데이비드 힐러드 인터뷰

 

보스톤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힐러드는 두 장, 그리고 대부분은 세 장, 혹은 많게는 네 장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그는 이 형식을 1993년부터 16년을 넘도록 지키고 있다. 주로 미국 북동부 작은 교외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의 사진들은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길게 늘어져 있지만 그 사이는 마디마디 끊겨있다. 종종 사람들은 그 끊겨진 마디를 건너뛰며 서로를 기대고 있지만 그보다 자주 사람들은 고립된 공간과 시간의 프레임에 홀로 남아있다. 데이비드 힐러드의 사진을 보는 다수의 사람들은 작가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여러 곳에서 그의 자전적인 모습들을 자주 찾아내고 있다. 그가 사진 안에 있던, 그가 사진 속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던 간에.

 

‘Hope'에 나온 한 아버지와 아들은 작가가 알라스카에서 만난 부자이다.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작가는 아버지와 달리 아이가 낚시를 즐기지 못하고 지루해 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사진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이 작은 아이는 어쩌면 데이비드 힐러드의 어릴 적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Rock Bottom'에서 작가와 그의 아버지가 직접 나오면서 ‘Hope'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반복되고 있다.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와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숨기지 않는다. 해군출신의 보수적 노동계층인 배경을 둔 아버지가 그의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데이비드 힐러드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한 것도,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성정체성에 관한 것도, 사진에서 숨기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 내면에 혹은 사람들 사이에 갈라진 틈을 드러내고 있다. 그 틈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이지만 묘한 방식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사진은 치유력을 지니고 있다. 
 

 

'Rock Bottom‘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버지와 나다. 나의 아버지는 해군으로 있을 때 가슴에 두 마리의 제비 문신을 그려 넣었다. 나도 그러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똑같은 제비 문신을 했다. 여기서 아버지와 나를 따로 떨어져서 생각에 잠겨있다. ‘What the Ice Gets, the Ice Keeps'에 있는 사람도 나의 아버지인데 여기서 그는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처럼 보인다. 약간 과장하자면 아버지는 무력하고 길을 잃은 듯 보인다. 나이든 남자를 속옷만 입히고 사진 찍는 건 늘 굉장한 일이다. 아버지도 이 사진을 무척 좋아하신다.

 
위의 두 사진과 ‘Swimmers', 그리고 'Shirts vs. Skins' 작품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야기한 네 장의 사진은 모두 고립된다는 것, 그리고 조금은 내면성찰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Shirts vs. Skins'는 두 농구팀에 시합을 위한 대전하고 있는 직전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Swimmers'는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한 한 청소년의 모습이다.

 

 

다른 사진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듣고 싶은데.

‘Hulk'는 한 지방축제에서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던 헐크 풍선 옆에 서있던 낯선 남자를 촬영한 것이다. 그는 잘 생겼지만 조금 위험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의 촬영요구를 들어주기는 했지만 그는 접근하기 어려웠으며 촬영하는 내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러한 느낌이 사진에 남아있는 것이 좋다. 사진에서 그는 마치 금방이라도 날 칠 듯이 보인다. ’Spring Trainer'에서는 한 남자가 집안에 갖추어진 헬스기구들을 가지고 몸을 다지고 있는 모습이다. 내 남동생은 어렸을 때 상당한 시간을 지하에서 몸을 다지느라 시간을 보냈다. 동생은 상체 앞 근육 보다 등 뒤의 근육이 더 발달했는데 그 점이 좋았다. 거울을 놓고 남자의 양면을 보여줌으로써 이 남자가 겪고 있는 완벽한 신체를 만들려하는 고충을 보여 줄 수 있었다. ‘Hot Coffee, Soft Porn'에서는 나의 아버지와 삼촌이 도너츠와 커피, 그리고 포르노를 보고 있는 데 이는 중산층 남자들 사이의 유대감 같은 것이다.

 
당신의 사진이 자전적이란 이야기를 많이 한다. 확실히 당신 사진 속엔 당신 아버지가 있고, 가족이 있고, 그리고 당신 자신도 있다.

초기에 시작할 때 가족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면에서 혹은 그렇지 않은 면에서 우리는 모두 가족이 있고 가까운 친구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각자의 독특한 환경을 형성하게 되어있다. 내 생각에 내가 나의 개인적인 삶과 시선에 대해서 작업을 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열어놓으면 나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도 이를 각자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볼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이 사진들에는 내 이야기가 있지만, ‘나 자신’에 관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사진 속에 담겨 있는 많은 메시지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 메시지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내 사진 하나하나를 해체해서 분석해 줄 수는 없다고 본다. 그건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나는 의미가 갇혀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각각의 사진에는 각각의 의미와 메시지가 있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구축된 사진은 사람들 각자의 해석과 경험에 열려 있을 뿐이다.

 
아버지가 사진에 자주 보인다. 아버지와 가까운가?

아버지와 나의 사이는 무척 가깝다. 사실 작품 활동을 같이 하면서 더욱 더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사진 속에서 아버지와 당신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기는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당신과 아버지가 따로 따로 속한 사진 사이의 틈은 그 거리감을 더 멀게 느껴지게 한다.

아버지와 나는 가깝지만 그래도 우리 둘이 전혀 다른 개개인이란 사실은 바뀔 수 없다. 우리 둘 사이에는 우리가 같이 나누고 즐길 수 있는 면들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는 맞지 않거나 서로를 어렵게 하는 일들도 있다. 이 또한 나는 많은 사람이 겪는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작업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과정 같은 것이다. ‘Hug'에선 나와 아버지가 서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사진이 없다는 생각에 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때로는 감추어져 있고 떄로는 좀 더 드러나기도 하면서 성sexuality은 당신 사진의 중요한 관심사중의 하나다.

아마도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미리 알려두는 것이 맞을 듯하다. 모든 사진에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과 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동성애자이고 그래서 내 삶의 대부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는 사진이라고 해도 이는 내 모든 사진에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함께 한 사진을 보면 이것이 사실은 해군출신에 공장에서 일하던 하급중산층 남자와 그의 동성애자인 아들과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진에 보다 심도 깊은 중요성을 가져오게 된다.

 
아버지가 당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반응이 어땠는지.

처음 몇 년은 힘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자식이 동성애자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너무 다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동성애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의 아버지도 그걸 아신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결국에는 나를 응원해주시고 내가 원하던 사람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적게는 2장, 많게는 4장의 사진이 틈을 두고 간격으로 펼쳐지는 작품의 형식이 독특하다. 이 형식을 거의 16년간 유지하고 있는 데 이러한 형식에 대한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예전에 나는 영화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영상이란 매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들에 한계를 느꼈다. 마치 붕 떠있는 것 같은. 그러다 나는 사진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는데 사진에서도 다소의 제약을 느꼈다. 사진은 정말 보이는 그대로 단 하나의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각각의 사진을 붙여다가 영화 카메라가 그렇듯이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연대기적 순서로 놓아보게 되었다. 사진 카메라로 촬영한 것들이 그렇듯이 내 사진들도 벽에 고정되어 걸리겠지만 어떤 면에서 나는 영화와 사진이라는 두 개의 매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는 두 매체의 장점들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복수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유동성과 움직임은 물론 정통 사진의 기능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한 사진에서 다른 사진으로 넘어가기 전에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바라볼 수 있다.

 

틈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틈의 역할은 중요하다. 내가 사진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우리가 보내는 시간 사이에 동떨어진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커다란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삶은 '연속체continuum'이다.

 

틈이 단순히 시간 사이의 틈처럼만은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 (사실 이미지들 사이의 시간 변화는 사람들이 보기에 미약하거나 거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마치 모두 동시에 촬영된 것처럼. 틈의 또 다른 역할은 사람들 간의 심리적 거리감에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혼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사진들 속에서 나는 사람들 사이를 고립시켰다. 또 다른 경우에는 각각의 사진들을 넘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이번엔 이것을 보고, 지금은 이것, 그리고 다음엔 또 이것을 보는 식으로 안내하기 위해 이미지마다 초점을 옮기면서 촬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연출에 의해서 촬영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는 것도 있다. 그리고는 이 사진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사용한다. 사실 한 작품 안에서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이 연출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사람들이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사진에 무엇이 담겨있고 무엇을 말하는 가에 있다. 만일 연출이 필요하다면 나는 배우를 고용해서 촬영을 할 것이다. 그러다가 만일 다음날 내가 혼자 길을 걷다가 한 남자가 길목에서 멋진 것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촬영을 할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연출한 사진과 우연히 촬영한 사진을 나란히 붙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 것이다. 중요한 건 사진에 담긴 내용이다. 만일 나란히 붙은 두 장의 사진이 서로 다른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실 때문에 어떠한 긴장감이 유발된다면 이 또한 좋다. 예일대에서 사진 촬영과 연출에 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내가 예일대에서 그곳에서 말하는 특정한 사진에 대해서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 바와 나의 스타일은 많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혼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게 나의 전시회에 오는 사진작가들과 학생들은 어떤 사진이 연출된 것이고 어떤 사진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 추측하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내 의도는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

내가 늘 다뤄오던 주제들, 남성성, 성, 그리고 가족관계들 이런 것들은 아마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들은 내 사진 속에서 항상 엉켜있다. 지금 작업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는 플로리다주 남부에 살고 계신 기독교인이신 나의 어머니와 여기 뉴잉글랜드에 계신 무신론자인 아버지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영적충만을 이루기 위한 탐색을 시험하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이 맘에 든다. 나만의 개인적인 혹은 다른 “구원자들”을 포함시켜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했다. 지금은 그냥 새로운 작업 때문에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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