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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포트폴리오 리뷰를

준비하고 있다면

피바디 에섹스 미술관, 사진 큐레이터 사라 켄넬에게 물었습니다

지난 1월,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춥던 주에 따뜻한 보스턴에서 얼어붙은 서울까지 찾아온 이가 있었습니다. 사라 켄넬(Sarah Kennel)은 보스턴 피바디 에섹스 미술관(Peabody Essex Museum)의 사진 큐레이터입니다. 켄넬이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제7회 일우사진상 심사를 위해서였습니다. 켄넬 외에도 핫제 칸츠(Hatje Cantz)의 편집장 나딘 바쓰(Nadine Barth)가 국내 심사위원단과 함께 이틀간 포트폴리오 리뷰를 진행하고 일우사진상 심사를 하였습니다. 1차 선발된 24명의 사진가들을 20분 간격으로 이틀 동안 포트폴리오 리뷰를 진행하고 심사하는 일은, 사진가들에게도 심사위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진가들은 몇 년 동안 공들인 작업과 사진가로서의 자신이 그간 거쳐 온 길과 앞으로 향하고자 하는 방향을 단 20분 안에 설명해야했고, 한국의 사진가들을 거의 모르는 국외 심사위원들은 단 20분 안에 사진작업의 가치를 판단하고 사진가의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가늠해야했습니다. 저는 통역으로 이틀 동안 사라 켄넬의 옆자리를 지키며 모든 포트폴리오 리뷰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포트폴리오 리뷰가 시작된 초기에 켄넬은 심사위원이기에, 저는 또 심사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말 외에는 서로 말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 리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로 이어졌고, 차츰 둘 다 수다가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모든 사진가들에게 정직한 의견과 따뜻한 조언을 친절하게 건내던 켄넬도 차마 그들에게 일일이 말하지 못한 조언과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사진가의 경력이나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포트폴리오 리뷰에 익숙하지 않거나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는 더 아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은 사라 켄넬이 이틀 간 감당해야했던 혹독했던 서울의 추위를 떠나 보스턴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이메일로 이어졌습니다. 켄넬의 이야기들은, 비단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진가들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리뷰를 준비하는 모든 사진가들을 위한 조언이기도 했기에, 심사위원의 닫힌 방을 떠나 공개할 마음으로 조금 더 형식을 갖추어 사라 켄넬에게 되묻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자주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여하고 계신가요?

일년에 한 두번 정도는 되는데 그때마다 다른 경험을 얻죠. 경우에 따라서는 일우사진상처럼 상을 수여하는 리뷰이기도 하고, 아니면 워싱턴DC에서 매년 열리는 포토디씨(FotoDC)처럼 사진축제의 일부로서 학생부터 예술가까지, 다양한 수준의 작가들이 큐레이터들에게 자신의 사진 포트폴리오를 리뷰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공식 리뷰 시간 외에도 별도로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진가들을 종종 만날 기회도 있어요. 공식 리뷰에서와 같이 정해진 시간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 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저에게도 소중하고 즐겁죠. 조금 더 편하고 격식 없는 교감이 오가다 보니 사실 이렇게 해서 본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가들에게도 그런 리뷰 시간이 더 이상적이고 바라는 바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적으로는 시간 제약과 규칙이 적용되는 공식 리뷰가 많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때는 보통 하나의 포트폴리오 리뷰를 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할당되는지요?

보통 20~30분 정도의 시간이 부여됩니다. 이 정도의 시간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보기에는 충분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탐색전만 하다가 끝나버려 아쉬움만 남기는 시간이 되기도 하죠. 보통 그 시간이 충분할 수 있는 지는, 단 하나의 프로젝트만 리뷰를 할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살펴봐야 되는 지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나요. 그리고 작업의 복잡성과 완성도, 작가의 경력에 따라서도 많이 차이가 나겠죠. 사진가의 입장에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싶다면 타협이 필요해요. 포기해야 할 것은 과감히 포기해야죠. 그렇게 한다면 30분도 한 작가의 가능성과 프로젝트를 가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매 프로젝트와 촬영마다 최선을 다하는 사진가의 입장에서 여러 프로젝트나 사진 중에서 단 하나의 프로젝트나 한정된 사진만을 선택하는 타협은 쉽지 않은 결정인 것 같습니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가급적이면 한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을 권하시나요, 아니면 여러 프로젝트를 살펴보는 것이 한 사진가의 가능성을 보는 데 더 큰 도움이 될까요?

이는 저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사진가의 개인적인 경력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할 듯합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라고 한다면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어디에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드러나고 있는 지에 관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조언을 통해 차후에 자신의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진가가 자신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컨셉을 폭넓은 범위 안에서 설명하고 자신이 그 컨셉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 지를 두 세 개의 관련 포트폴리오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을 때 포트폴리오 리뷰가 가장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다수의 사진이나 프로젝트를 나열하는 것 보다는 2~3장의 사진이라도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고민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한 두 장이 사진이 너무 강렬해서 그것을 선택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프로젝트나 자신의 사진 경력의 틀 안에서 그 사진이 어떠한 지점에 있고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고민한 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 리뷰를 하면서 눈여겨보시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우선, 개인적으로는 사진가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지 여부를 중요하게 여겨요. 그러한 기준은 작업을 평가하고 사진가가 자신의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는데 얼마만큼 성공적이었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저는 사진가가 자신만의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 살펴보죠. 설사 이미 다른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여러 번 다뤄진 소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지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한 작업을 드러내는 그 사진가만의 특성과 감각이 묻어나는 작업을 찾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술적인 부분에 관한 것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의 완성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프린트가 어떤 것인지, 어떠한 기술의 차이가 사진을 흥미롭게 만들어서 관찰자가 주목하게 하고 그 사람을 묶어둘 수 있는지를, 사진가 스스로가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는 지에 관한 것이죠. 


디지털 기재의 발달로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모니터나 태블렛을 활용하는 사진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심사위원으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분명 많은 작품을 편리하고 빠른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만일 작업의 최종 형식이 인화지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인화지와의 공감이 더 빠르고 직설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몇 개의 작업은 인화지로 보여주면서 인화된 작업의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다수의 나머지 작업은 모니터나 태블렛으로 보여주면서 프로젝트의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인화지의 크기도 중요할까요?

언제나 중요하죠. 특히 일반적으로 사진의 크기에 따라서 사진에 미치는 그 영향력의 폭이 크게 변화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요. 다만, 포트폴리오 리뷰에서는 그 특성을 고려하고 역시 타협이 필요하겠죠. 사진을 편리하게 보여주는 것과 최선의 조건에서 보여주는 것 사이에서 고민해야될 경우가 자주 있죠. 대게의 경우 저는 최종 작업의 크기를 물어봐요. 다만 크기가 중요하다고 해서 큰 사진이 언제나 작은 사진보다 옳다는 뜻은 물론 아니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사진이 큰 사진보다 더 강렬할 수 있어요. 어디까지나 사진의 크기는 작업 자체가 품고 있는 본질과 어울려야 합니다. 

관리하기 수월하고 외부 환경에 취약한 인화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비닐에 넣어서 바인더로 관리하는 사진가들도 적지 않은데요,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이러한 바인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일일이 비닐에서 꺼내어서 보고 싶어요. 비닐 안에 있는 사진과 그렇지 않는 사진의 차이는 크죠. 차라리 상자 안에 인화지를 쌓고서 그 사이마다 보호지를 두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어요. 비닐 안에 있는 상태에서는 빛 반사로 관찰하는데 제약이 생기기도 하고, 사진의 명암과 질감을 보기에도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포트폴리오 리뷰를 고려하고 있는 사진가들에게 들려주실 수 있는 일반적인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리뷰 이전에 미리 할 말을 준비하고 연습하면서 한정된 시간 안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가늠해 보았으면 해요.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만 쉴 새 없이 나열하지 말고 심사위원이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배치하고 그 질문에도 대비해야 해요. 친구와 함께 미리 연습하면서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작업들을 잘 정리하고 가장 효과적인 순서와 속도로 제시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트폴리오 리뷰를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나 점수매개기보다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배우는 기회로 여겼으면 합니다. 

포토닷

사라 켄넬(Sarah Kennel)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사, 그리고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워싱턴DC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9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국립미술관의 해외전시회들을 기획했고 콜렉션 수집에 참여하였다. 2013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프랑스 사진가 샤를르 마르빌(Charles Marville)에 관한 논문으로 미술관큐레이터조합상(Association of Art Museum Curators)의 대상을 수상하고, 샐리 만(Sally Mann)의 전시회를 진행 중이기도 하며 피바디 에섹스 미술관의 사진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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