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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빛과 바람의 예술,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미술관, 한국관광공사

남원시를 가장 가까이에서 내려다보기 좋은 덕음봉으로 향하는 길, 남원의 소리와 여유로 가득한 춘향테마파크를 지나 가벼운 언덕을 살짝 넘으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네요. 마침 언덕 아래에는 움푹한 그릇에 담긴 듯한 함파우마을이 내려앉자 있고, 그 뒤로 가까이는 덕음봉의 줄기와 멀리는 지리산까지 겹겹이 풍경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남원 함파우마을과 지리산을 바라보는 이 언덕 위에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미술관은 지리산 앞에서 넙죽 엎드려 자세를 낮춘 듯 낮으면서도, 풍경 속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싶었던 것처럼 길고 가는 필로티가 앞으로 뻗어 나와 있네요. 


미술관 앞에 층층이 올려진 물의 정원은 하얀 미술관과 파란 하늘을 경쾌하게 반복하고, 얕은 물아래 넓게 깔린 검은 자갈은 무게감을 주며 예술을 맞이하는 관객의 자세를 진중하게 만들어주어요.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2018년 세워진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남원에서 나고 자란 김병종 작가가 400여 점의 작품을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건립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광한루로 한걸음에 달려가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그리고 도서시리즈 「화첩기행」으로도 유명한 작가가 되어 멋진 미술관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물의 정원 사이로 열린 좁고 긴 길을 따라 올라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면 김병종 작가의 작품을 1년 내내 볼 수 있는 1층 상설전시실으로 이어지는데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는 올해 9월부터 내년 10월까지, 40년 동안 붓을 놓은 적이 없다는 김병종 작가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기념하는 ‘김병종 40년, 붓은 잠들지 않는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4부로 나뉜 ‘김병종 40년, 붓은 잠들지 않는다’ 전의 첫 번째 전시는 1990년 이후 김병종 작가의 핵심 주제가 된 ‘생명’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어요. 작가는 1989년 서울대 앞 고시원에서 지내며 책을 쓰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고 합니다. 천천히 건강을 회복하며 지내던 어느 날 관악산에서 내려오며 본 붉은 꽃을 통해 강렬한 생명을 느꼈다고 해요. 이후 붉은 꽃은 ‘숲의 소년’, ‘화홍산수’, ‘12세의 자화상’ 등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등장하며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죠.


붉은 꽃으로 가득한 1층 ‘갤러리1’은 2층 천정까지 높게 열려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어요. 고개를 높이 들어 바라보게 되는 공간 구조는 작가가 어려서부터 좋아했다는 키 큰 소나무를 떠올리게 합니다. 미술관 마당에 있는 소나무를 들여놓아도 여유롭게 뻗어 오를 것만 같아요.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물의 정원 위로 길게 쭉 뻗은 2층 ‘갤러리2’ 공간 양쪽에는 김병종 작가의 대나무 작품들이 늘어져 있어요. 작가는 씨를 품고 날아가는 송홧가루를 그리다 그렇게 생명을 전달하는 힘인 바람이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화하기 위해 대나무를 빌어 바람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 속에서 작가의 붓끝을 따라 좌로 우로 흔들리는 대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대나무 숲 사이로 쉭 부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갤러리2’의 대나무 숲을 지나 끝에 있는 좁은 틈을 지나 담을 돌면 오는 길에 언덕에서 마주한 함파우마을과 지리산이 다시 한번 맞이합니다. 이번에는 더 높은 시선과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말이죠. 고개를 숙여 물의 정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소나무 숲과 지리산도 오가며 보며, 속절없이 앉아있기만 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공간입니다.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의 마지막 전시공간인 ‘갤러리3’으로 가려면 잠시 옥상으로 나와 바깥바람 사이를 지나야 해요. 구석구석 새로움을 주는 미술관 건축은 여기서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죠. 그럴 땐 저항 없이 잠시 멈춰 ‘미안카페’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정원의 물결을 보아도 좋아요.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아담한 크기의 ‘갤러리3’은 검은 커튼을 젖혀야 나오는 비밀스러운 암흑의 공간이에요. 평범하지 않은 전시공간이기에 그만큼 ‘갤러리3’만의 감흥을 전달하는 힘이 있어요. 지금은 잠시 김병종 작가의 아틀리에 구석에서 잠시 빌려온 듯한 작가의 책상을 두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화가이자 글을 쓰는 작가가 빼곡히 매운 노트가 있고요. 다음에 찾을 때는 또 어떤 쓰임을 보여줄 수 있을지 늘 기대되는 공간입니다.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갤러리3’에도 ‘갤러리2’와 같이 시간을 흡수하는 공간이 있어요. ‘갤러리3’만의 작은 호수까지 안고 있는 창 아래 벤치에 앉아있으면 미술관을 떠나기 싫어지죠. 곧 아니라면 언젠가라도 떠나야만 하겠지만, 어디에서든 물 위에 반짝이는 빛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날 것 같은 미술관입니다. 아니 강렬한 붉은 꽃, 거리를 가로지르는 송홧가루, 바람을 흔들리는 대나무를 보아도 다시 생각이 나겠지요. 그때마다 이곳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으로 돌아올게요.

김병종미술관,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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