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월트 디즈니 사(이하 ‘디즈니’)의 행보가 무척이나 바쁘다. 바쁠 뿐만 아니라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이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10년 여간 꾸준히 힘을 불려 온 디즈니가 본격적으로 힘자랑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

1980년대만 해도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의 명가로서 명예를 누리던 예전의 그 디즈니가 아니었다. 1989년,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잇다라 성공한 애니메이션들로 재기하는 듯했으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부침을 거듭하며 지냈다. 안정적인 사업 부분은 호텔과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뿐이었다. 

 

그러다가 2005년 밥 아이거가 CEO 자리에 앉으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바로 전까지 수익 배 분 문제로 결별을 예고하고 있던 픽셀을 2006년에 인수를 해버렸다.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콘텐츠를 꾸준히 늘리던 디즈니는 2009년에는 마블, 그리고 2012년에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와 함께 루카스필름을 인수해버렸다. 

​

최근에 디즈니는 20세기 폭스 스튜디오와 텔레비전 부분이 포함된 폭스의 핵심 사업영역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일단 협상은 멈춘 상태지만 디즈니의 영역 확장이 여기서 그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메이저 중의 메이저 스튜디오로 거듭나면서 할리우드 영화계와 텔레비전 방송계는 물론 스트리밍 서비스 생태계의 변화까지 예고하고 있는 디즈니를 올해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올해 8월, 디즈니는 넷플릭스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밥 아이거가 “넷플릭스는 디즈니의 적이 아니라 친구다”라며 굳건한 파트너쉽을 강조했던 것이 딱 2년 전이었다. 그리고 11월 초 디즈니는 디즈니 만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2019년 후반기에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도 넷플릭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콘텐츠 계획들도 함께 발표했다. 그 중에는 픽사의 ‘몬스터 주식회사’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는 물론 마블과 ‘스타워즈’의 텔레비전 시리즈 계획도 포함되어있다.

 

디즈니가 결별을 선언하기 전까지 넷플릭스는 승승장구했다. 올해 처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입자 수 10억을 넘겼고 올해 안으로 12억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스트리밍 서비스 2위 업체인 아마존 프라임의 가입자 수가 8억 명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이는 것과도 비교된다. 문제는 디즈니가 또 다른 스트리머 서비스 사로 돌아올 이후다. 8월 디즈니의 결별 선언 후 넷플릭스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이든, 아마존이든, 훌루이든,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사가 어디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이 쫓아다니는 것은 콘텐츠일 뿐이다. 

 

지금 넷플릭스의 성장 배경에는 <데어데블>과 <제시카 존스>와 같은 마블 콘텐츠도 한몫을 했다. 디즈니가 콘텐츠 공급 중단을 시작하면서 넷플릭스가 제작하던 마블 시리즈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넷플릭스도 <킹스맨>과 <킥 액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크 밀러의 밀러월드 사를 인수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코믹스 콘텐츠에 관한 한 디즈니의 마블에 대적하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디즈니는 올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스튜디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에 디즈니는 그 이전까지는 어떤 스튜디오도 가져보지 못한 26.3%라는 기록적인 수치의 매출액 점유율을 기록했다. 올해도 디즈니는 20% 이상의 점유율을 무난하게 지킬 것으로 보인다. 

 

올해 아직까지는 워너브라더스가 매출액 2.5억 달러(약 2,716억 원, 11월 중순 기준)를 앞서며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워너브라더스의 야심작이었던 <저스티스 리그>가 DC영화 중에서도 최저의 실적으로 오프닝을 연 이후에 계속 고전하고 있다. 반면 디즈니의 <토르: 라그나로크>는 배 이상의 실적을 거두고 있고, 연말까지 기대작인 애니메이션 <코코>, 그리고 무엇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등의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역전이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

극장주들과의 갈등 
극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극장주에 대한 디즈니의 자세는 점차 더 꼿꼿해지고 있다. 디즈니는 12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개봉을 앞두고 극장주에게 수익의 65%를 요구했다. 스튜디오가 극장으로부터 받는 수익배분율이 평균 55%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다못해 최대 규모의 상영관에서 최소 4주 이상의 상영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극장주의 수익을 5% 추가 삭감해서 최대 70%까지 가졌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디즈니가 이러한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마블의 프랜차이즈, 픽사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디즈니에서 새로 시작된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계속 성공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디즈니는 최근 들어 점점 더 대규모 예산의 영화들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올해 디즈니의 높은 점유율은 <카3: 새로운 도전>이 개봉된 6월 중순부터(미국 기준) <토르: 라그나로크>가 나온 10월까지 개봉된 디즈니 영화가 한 편도 없었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 놀랍다. 

대규모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디즈니의 전략은 블록버스터는 물론 중소규모 예산의 영화에도 투자와 배급을 이어가고 있는 유니버설이나 워너브라더스와 같은 경쟁 스튜디오의 전략과 대비된다. 유니버설은 올해 대형 예산의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와 저예산의 <겟 아웃>을 함께 제작 및 배급했으며, 워너브라더스도 <원더우먼>과 <저스티스 리그>와 같은 대형 DC 프랜차이즈 영화는 물론 저예산 공포영화 <그것>에도 공을 들였다. <겟아웃>과 <그것>의 흥행 성공에도 디즈니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제작 예산이 얼마가 됐건 마케팅에는 비교적 비슷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은 영화들을 포기하고 큰 영화들에 집중하고 있는 디즈니의 전략이 아직까지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디즈니의 대형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에는 다른 영화들이 개봉을 꺼리면서 극장에서의 디즈니의 영향력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개봉 즈음에 디즈니 영화 외에 선택이 적은 극장들이 디즈니 영화의 상영관을 늘리고 있고, 연중 수익에서 디즈니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극장들의 디즈니 의존도도 높아졌다. <스타워즈> 상영에 대한 디즈니에 무리한 요구에 대해 대형 극장 체인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반면, 소규모 극장들만이 <스타워즈> 보이콧에 나섰을 뿐이다.

 

부정적 기사를 낸 LA타임즈에 대한 보복, 그리고 후폭풍
디즈니는 최근 언론과 평론가들과도 갈등을 겪었다. 디즈니는 LA타임즈에서 디즈니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낸 후 디즈니에서 진행하는 시사회 등 모든 행사에 LA타임즈의 참석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LA타임즈에서는 <토르: 라그나로크> 관련 기사를 적시에 다루지 못하기도 했다. 
 

시작은 LA타임즈가 9월에 보도한 기사로부터 비롯됐다. 기사에서 LA타임즈는 디즈니가 디즈니랜드 파크와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등 디즈니의 테마공원들이 집중되어있는 애나하임 시에 부당한 요구를 해온 사실을 보도했다. 약 20년 전에 테마공원을 확장하면서 디즈니의 요구에 따라 애나하임 시는 1억 8백 달러(약 1,173억 원)를 들여 주차장을 건설했고 지금도 막대한 유지비용을 시의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디즈니가 애나하임 시에 지불하는 리스 비용은 연 1달러에 불과하다. 

​

당시 디즈니는 애나하임이 이 요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애나하임 시를 떠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재까지 디즈니는 애나하임 시가 건설했고 유지하는 주차장으로부터 매년 적어도 3,500만 달러(약 380억 원)로 추산되는 수익을 모두 가져가고 있다. 게다가 디즈니는 애나하임 시의 세금정책과 시의회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타임즈에 대한 디즈니의 보복성 조치는 당장 다른 언론사들과 평론가 단체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여러 언론들이 디즈니 영화 시사회에 대한 보이콧에 나섰고, LA영화평론가협회, 뉴욕영화평론가협회, 보스턴영화평론가협회 등은 비판 성명을 내고 LA타임즈에 대한 탄압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연말 시상식에서 디즈니 영화를 배제하겠다고 나섰다.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디즈니는 11월 초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LA타임즈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다. 

​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디즈니가 언론사에게 지속적으로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디즈니의 담당자들은 그동안 영화시사회가 언론사가 디즈니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right)’가 아니라 디즈니가 언론사에게 베풀고 있는 ‘특혜(privilege)’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디즈니가 곧 할리우드에서 과거 1930~40년대의 MGM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진 대형 스튜디오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MGM은 당시 한 회사가 영화제작, 배급, 그리고 극장 상영까지 모두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 괴물이었다. MGM의 독주는 결국 대법원 판결을 통해 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는 독과점 금지 법안이 시행된 1948년 이후에나 멈출 수 있었다. 

​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로 디즈니 영화의 시사회가 있는 단관의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엘 카피탄’ 극장을 제외하고는 디즈니가 소유한 극장은 없다. 하지만 극장을 소유하지도 않고도 디즈니는 이미 극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영향력을 행사함에 있어 디즈니는 막강할 뿐만 아니라 종종 공격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아직 디즈니가 확실한 독점 구도를 잡기 전부터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 앞으로, 혹시나, 영화계도 방송계도 스트리밍 서비스도 모두 디즈니가 장악하는 날이 걱정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