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찾아보는 재미,

<녹터널 애니멀스>의 미술작품들

Taste in Images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녹터널 애니멀스>를 보면서, 까메오처럼 곳곳에 꼼꼼히 배치된(그리고 종종 노골적으로 노출된) 여러 유명 작품들에 놀라셨겠죠. 감독이기 이전에 패션 디자이너인 톰 포드 감독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감각이 발현된 것이죠. 처음부터 관객들을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했던 비디오(및 설치) 작품과 많은 관객들이 기억하는 피를 흘리는 듯한 레터링 'REVENGE' 회화는 이번 영화를 위해서 영화 미술팀이 특별히 제작한 것이지만, 그 외에는 모두 기존의 유명한 미술품으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미술작품들이 주로 초호화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도 고독하고 (우리 생각보다) 불행하기도 한 수잔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미술품들이 영화 속 캐릭터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수잔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정심을 유지하고 있긴 있지만, 가난하고 능력없는 남편 에드워드를 떠나 부유하고 잘나가고 (그리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 떠나간 속물(snob)이라는 견해도 은연 중에 여러차례 비추입니다. (대부분 여자 수잔만 욕하던데, 개인적으론 에드워드의 자격지심도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완연한 속물이었다면 애초에 에드워드와 결혼도 안했겠죠. 수잔으로선 최선을 다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수잔은 사람의 진정성과 진실된 사랑을 믿는 듯 말하고 행동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속물 근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격'에 맞는 사람을 찾아 자신의 '급'에 맞는 삶은 영위하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영화 속에서 제프 쿤스(Jeff Koons)와 데미언 허스트(Demien Hirst)의 미술작품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게 느껴집니다. 두 사람은, 데미언 허스트가 제프 쿤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데다 나란히 당시 최고가의 (생존 작가) 미술품 가격을 경신했던 경력을 가졌고, 엄청난 부를 쌓은 현대미술가로서 뜨거운 찬사와 동시에 격렬한 비난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사치(Saatchi)나 코헨(Cohen)과 같은 슈퍼콜렉터들이 앞다투어 그들의 작품들을 사들이면서 (국내에서도 삼성이나 신세계 같은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죠), 그들의 이름 자체가 이제는 브랜드가 되어서 고가의 패션 브랜드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두 사람은 싸구려 키치 문화와 논란의 예술성 속에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기에 그들에 대한 비난은 종종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과 비아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똥만 싸도 예술이라는 현대미술이라니.) 

Jeff Koons, Balloon Dog (1994~2000)

수잔의 초호화 주택 뒷마당 풀장 옆에 무심한 듯 놓여있던 그 강아지입니다. 언뜻 봐도 그렇게 낯선 형태는 아닌데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 생일 파티에 가면 어릿광대 형/누나가 긴 풍선을 불어 몇번 싹싹 돌려서 뚝딱 하고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선물하던 그 풍선 강아지 모습 그대로 입니다. 이 강아지가 색깔에 따라 버전이 몇 개 있는데, 수잔이 가지고 있던 강아지는 어둠 속이라 색상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위 사진에 보이는 'Orange' 버전은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코헨이 전화로 5,840만 달러(당시 환율 약 626억원)에 이 장난감을 사갔습니다. (여기, 풍선 하나 주문할게요) 당시 생존 작가로서는 최고가의 미술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전부터 존재했고 누구나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이 강아지 풍선의 디자인에 대해서 제프 쿤스가 저작권을 주장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술관에서 풍선 강아지 모양의 책버팀(bookend) 기념품을 제작하려고 하니까, 잠깐 그거 내 껀데, 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걸었던 것이죠. 이후에 쿤스가 소송을 포기하긴 했지만 남의 아이디어를 빌어다 써 큰 돈을 벌어놓고는 뻔뻔하다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만 했죠. 

Damien Hirst, Saint Sebastian, Exquisite Pain, 2007

수잔이 미술관에서 바라보던 작품입니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명확히 하고 있듯이 '성인 세바스찬'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구글링으로 'Saint Sebastian'을 검색하면 수많은 회화들이 쓰나미를 이루는데,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페루지노(Pietro Perugino)의 작품(1493~94)이 유명합니다. 성인 세바스찬은 황제의 근위대장 출신인데, 로마 제국의 크리스트교 박해로 화살에 맞아 처형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벌거벗은 채로 화살을 맞은 세바스찬의 고혹하면서도 의연한 모습은 남자의 누드를 의심받지 않고 그릴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해서 오랫동안 동성애를 탐하는 해방구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Natural History'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허스트의 죽은 동물의 사체를 자주 활용한 이 '자연사' 시리즈는 그에게 '죽음의 박제사'라는 별명을 안겨준 시리즈로, 상어가 들어있는 1991년 작품 'The Physical Impossibilities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 제일 잘 알려져있죠. 위의 작품은 같은 시리즈의 2007년 작으로 비교적 최근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거의 나오자 마자 가수 조지 마이클이 구매했고 지금도 달라스의 Goss-Michael Foundation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구매가가 7백만 달러(약 82억)였다고 하는데, 허스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것입니다.          


영감을 준 성인 세바스찬 회화와 비교를 하자면 성인을 끌어내고 소의 사체를 집어 넣은 샘인데, 크리스트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허스트는 이미 99년에 유리 십자가 사이에 성인도 아닌 성스런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해골을 넣은 전력이 있죠.

Richard Misrach, Desert Fire #153 (Man with Rifle), 1984

이 이미지가 극장 화면 전체를 차지했을 때 제 심장은 폭발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가 리차드 미스락의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수잔의 집 입구에 걸려 있던 작품입니다. 카메라는 이 사진을 한참 주목하다 그 앞으로 수잔이 서서히 들어오죠. 총을 겨누고 있음에도 두 사람, 특히 위협을 받고 있는 오른쪽 사람이 웃고 있습니다. 이로서 둘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명확이 드러나지만 (연출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 둘 주변을 타고 들어가는 불과 화재로 인한 짙은 연기로 인해 우리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은 남아있죠. 영화의 미술담당자 말에 의하면 영화 후반부 토니와 레이가 총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이 이미지와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네요.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79년부터 오랫동안 이어진 리차드 미스락의 시리즈 'Desert Cantos'의 네번째 시리즈 'The Fires(1983~1985)'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미스락은 오랫동안 인간들과 문명이 자연에게 남긴 흔적과 상처, 그리고 다시 스스로 치유과 복구의 길을 찾아가며 인간과 문명을 압도해가는 자연을 담아왔습니다. 이전 '아름다운' 풍경사진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을 깨준 작가이며,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beauty'의 관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미학인 'sublime'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sublime'의 풍경사진을 보여주는 미스락의 작품에도 충격적인 작품은 있습니다. 허스트가 축산물시장에서 가져온 소의 사체를 절단하거나 머리를 유리 안에 넣어 전시장에 던져 놓은 것도 충격적이긴 하지만, 미스락은 네바다 사막에 실제로 버려진 수많은 가축들의 사체 더미를 발견하여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죠. 매장된 것도 아니고 그대로 방치되어 썩어가고 있던 동물들에게서 그들이 죽은 이유도 그렇게 버려진 이유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 상태로 그냥 우리의 삶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미술관 전시보다 더 충격적인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John Currin, Nude in Convex Mirror, 2015

존 커린는 현재 회화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예술가 중의 한 명임과 동시에 역시 논란도 많은 화가입니다. 커린의 아내는 레이첼 화인스타인(Rachel Feinstein)로 역시 유명한 예술가(조각가)입니다. 그런데 커린의 작품들을 쭉 보고 화인스타인의 사진을 보면 금방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텐데, 그건 아내가 커린의 회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뮤즈이기 때문이죠.

 
현대미술인듯 아닌 듯 존 커린의 회화는 언뜻 보면 핀업걸 일러스트레이션의 과장과 플레이보이(혹은 포르노) 잡지에서 본 듯한 성적 도발과 자태를 담고 있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그의 미술적 기교와 화풍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회화의 고풍스러운 전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성과 미에 대한 현대 사회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공격한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 신체의 과장과 성적인 표현 때문에 성차별주의자로 많은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비난에 대해서 작가는 그것은 오해일 뿐이라며 자신의 작품에서는 남성도 여성도 모두 남성에 관한 것이라는 알송달송한 해명으로 피해갔습니다.   

Alexander Calder, 23 Snowflakes, 1956

리모콘이 말을 듣지 않던 TV가 놓여있던 방에서 수잔의 머리 위에는 댕글댕글 모빌이 흔들리고 있었죠. 이제는 모빌하면 예술보다 아이들 방에 걸린 장난감 혹은 인테리어 소품이 먼저 떠올려지겠지만, 수잔의 모빌은 바로 그 모빌의 대가 알렉산더 콜더 작품입니다. 사실 콜더는 모빌 작품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특히 회화) 대부분은 모빌, 키네틱 아트의 예술가로만 기억하고 있죠.

 
기계공학도 출신 답게 모빌도 처음엔 모터로 움직였었는데 점차 바람, 빛, 습도, 손길로만 움직이는 모빌들을 만들어냈죠. 땅에 고정되고 움직이지 않는 기존 조각에 대한 관념을 극복한 콜더의 모빌은 심심한 인테리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볼거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모빌의 추상적인 도형들의 수많은 조합과 해체가 반복되는 모습은 전통 미술에서는 상상조차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모빌이란 말 자체가 다다이즘, 개념미술, 큐비즘의 대가 마르쉘 듀상(Marcel Duchamp)이 알렉산더 콜더의 작품을 보고 붙여준 말입니다. 소변기도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주변의 어떤 사물(found object)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근현대미술에서 주로 욕을 먹는 개념미술의 헬게이트를 연 장본인이시죠.   


영화에 나온 미술품 중 꽤 많은 작품들이 진품이라고 하는데, 미스락의 사진과 같이 감독 개인소장품도 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소장품이라곤 해도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작가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럴 때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자 예술애호가로서의 존 포드의 인맥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제프 쿤스와 데미언 허스트도 (에이전시가 아니라) 그들과 직접 통화해서 동의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진품을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특히, 허스트의 'Saint Sebastian, Exquisite Pain' 같은 경우는 (놀랍게도) CG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네요. 존 커린의 그림같은 경우는 커린의 에이전시인 뉴욕의 가고시안(Gagosian) 갤러리로부터 대형 파일을 받아서 캔버스에 인화를 했습니다. 이 그림은 촬영이 끝나곤 갤러리로 돌려보내져 파쇄됬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영화 속에는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애론 커리(Aaron Curry), 앤디 워홀(Andy Warhol),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토니 스미스(Tony Smith), 조안 미첼(Joan Mitchell), 로버트 폴리도리(Robert Polidori), 잭 피어슨(Jack Pierson) 등의 작품들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제가 잘 모르는 작가들도 많고 이들 여러 작품들이 다 언제 나왔는가도 싶은게 VOD 나오면 다시 천천히 보면서 찾아봐야겠네요.